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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 <추격자>와 실제 유영철의 행각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총 21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유영철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 <추격자>.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 당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국 영화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로 <추격자>를 꼽았을 만큼, 상당한 작품성을 지녔다.

그런데 실화 바탕 영화를 본 후에는 항상 영화 속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사실일까라는 궁금증이 들기 마련이다. 표창원 박사의 2005년작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과 각종 신문기사를 토대로, 먼저 유영철의 실제 행각을 되짚어본 후 영화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1. 괴물이 만들어진 시간

 

가정환경, 어린시절 :

 

유영철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고 술, 도박, 여자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유영철이 7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내연 관계에 있던 여자와 재혼 해 유영철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여관을 전전하며 살았다고한다. 그 과정에서 유영철은 아버지 뿐 아니라 계모에게도 심심찮게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진학 후 친어머니가 상경해 이웃에 살며 세 아들을 데려다 기르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유영철은 직접적인 학대에서 벗어나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지속된 학대로 인해 애정 결핍이 생겼던 탓인지, 그는 주위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심리에서 말썽을 부리고 거짓말을 일삼았다고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래도 별탈없이 다닌 유영철은 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색맹이어서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런 상태였기에 정식 고등학교에 진학을 실패한 후, 학위 인정이 되지 않는 직업 학교에 진학한다. 직업 학교에서는 음악 밴드를 조직해 활동하고 문학을 탐독하는 등 꽤 만족스러운 경험도 많았다고 한다.

 

첫 범죄, 그리고 전과자의 삶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 학대의 기억이 발생시키는 부정적인 정서가 장기가 끼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유영철은 강한 과시욕, 물욕, 소유욕을 보였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그러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자, 유영철은 18살이었덙 1988년 6월 첫 범죄를 저지른다. 남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갈취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붙잡혀 소년원에 넘겨진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기, 절도, 공무원 사칭 등의 범죄로 11번이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연쇄 살인 결심 :

 

유영철은 자존심이 세고 앞서 말했듯 과시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경찰에 붙잡혀서도 아이큐가 140이 넘는다는 거짓말(실제로 그의 아이큐는 95~115 사이였다)을 하며 스스로를 부풀렸고, 쇼펜하우어와 체 게바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떠벌리며 연쇄 살인을 합리화 하는 등 자신의 이상적 자아가 지나치게 높았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도둑질, 체포, 교도소 수감의 악순환을 겪다보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속에서 점차 인격이 망가져갔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결정적인 살해 욕구에 불을 당긴 사안은 바로 아내의 이혼 요구였다. 그는 결혼해서 아들까지 있었는데,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가족을 부양하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어 달라는 아내의 간절한 바람을 져버리고 또 도둑질을 하다 감옥에 들어가 3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내는 옥 중에 있는 유영철에게 이혼 통보를 했고, 유영철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2003년 9월 11일,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유영철은 사회를 향한 복수 준비에 착수한다. 징역 복역 중 노역 대가로 받은 돈을 가지고 신촌에 원룸을 얻은 후 차근차근 범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 부유층 주택 노인 연쇄 살인 – 총 피해 사망자 : 8명

 

1) 신사동 명예교수 부부

 

 

↑신사동 피해 주택

 

2003년 9월 24일 아침, 지하철을 탄 유영철은 압구정역에 내려 거리를 쏘다녔다. 압구정 거리에서 잘사는 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인간 종족에 대한 적의를 한껏 고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자신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린 유영철은 신사동 주택가에서 범행 대상을 정했다. 단독 주택으로 담장이 있고 나무가 우거져있어 담장만 넘으면 안심하고 집안을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곳이 그의 주 범행 대상이었다.

담을 타고 들어간 유영철은 10분간 숨죽여 동태를 살폈다. 아무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확인한 후, 유영철은 열려있던 현관문에 들어가 안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노부부를 칼로 찌르고 해머로 잔인하게 내리쳤다.

절도 전과가 있는 자신이 용의자선상에 오를 것을 염려한 그는, 현금과 귀금속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절도한 물건이 있으면 자연스레 절도 전과 11범의 유영철이 의심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한 사이코패스의 모습이었다.

또한 지문이나 발자국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치밀하게 닦은 후 대문으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칼을 두고 온 것을 알고는 잠긴 현관문을 발로 차 문고리를 부수고 칼을 찾아 나왔다. 유영철은 후에 경찰에 잡혀서는 진술 과정에서 현관문을 다리로 찼을 때 다리털 몇 가닥이 빠져서 떨어졌을텐데 경찰이 못찾았냐고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2) 구기동 일가족

 

 

↑ 구기동 피해주택

 

당시 신사동 명예교수 부부 피살 사건이 난 직후 경찰은 금품, 귀금속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근거로 면식범에 의한 원한 살인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유영철의 치밀한 범죄 행각으로 인해 신사동 현장에서 경찰은 범인의 체모나 지문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것이 방송으로 전파를 탔다. 이를 안 유영철은 자신감을 얻고 두번째 범행을 계획한다.

2003년 10월 9일, 유영철은 신사동과는 정반대 방향인 불광역에서 내려 구기동으로 향했다. 신사동과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비슷한 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르면 경찰의 수사망에 포착되기 쉬울 거란 계산에 이렇듯 범행 장소를 동떨어진 곳으로 정한 것이다.

이번에도 넘어갈 만한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단독 주택을 노렸다. 담을 넘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유영철은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의 뒷통수를 해머로 마구 내리쳤다.

그 후 2층에서 내려오던 60대 안주인을 발견하고는 칼로 위협해 발로 배를 걷어차 넘어뜨린 후 집에 또 누가 있냐고 물었다. 2층에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유영철은 60대 안주인을 역시 해머로 내리쳐 죽인 후 아들에게로 향했다.

아들이 30대였는데, 표정도 이상하고 말도 더듬는 것을 보아 장애인임을 직감한 유영철은 자신감을 가지고 칼로 위협해 공간이 넓은 거실로 나오게 해서는 뒤돌아앉히고 해머로 마구 내리쳤다.

이렇게 살해를 저지른 유영철은 이번엔 신사동과의 유사성을 없애려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 흔적을 만들고 금고를 찾아 열려고 한 흔적도 조작했다.

 

 

3) 삼성동 노부인

 

 

↑삼성동 피해주택

 

구기동 사건때 까지도 경찰은 여전히 면식범에 의한 원한 관계 살인 사건으로 규정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한 유영철은 세번째 범행 계획을 세웠다.

 

2003년 10월 16일, 유영철은 칼과 해머를 챙기고 구기동과 반대 방향인 강남구 삼성동으로 향했다. 역시나 담장이 있고 나무가 우거진 마당을 가진 단독 주택을 골랐다. 담을 넘어 잠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유영철은 동태를 살피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택에 있던 할머니를 칼로 위협에 안방으로 끌고 들어와 누가 집에 더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안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할머니를 끌고 들어가 변기 위에 돌아앉히고는 해머를 꺼내 뒷통수를 가격했다. 야비한 공격이었다.

 

 

4) 혜화동 사건

 

 

↑혜화동 피해주택과 유영철 CCTV 사진(출처 : 한국의 연쇄살인 - 표창원 저)

 

 

삼성동 사건 직후부터 경찰은 이 사건이 단순한 면식범의 원한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닌, 연쇄살인이라는 것으로 수사 방향을 틀었다. 구기동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동일한 족적이 삼성동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언론도 연쇄살인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지금껏 범인의 윤곽도 못잡은 채 엉뚱하게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을 들쑤시고 다닌다고 맹비난했다.

 

그런 가운데 한 일선 경찰관이 “한 건만 더 발생하면 잡을 수 있다.”는 망언을 해 언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에 유영철은 한 달동안 잠잠했다. 그러던 11월 18일 화요일, 혜화동 양옥집을 범행 대상으로 택했다.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집에 침입한 유영철은 집안에서 마주친 50대 파출부 아주머니의 목에 칼을 대 위협하고 누가 더 있는지 알아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아기와 함께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해머로 여러 차례 내리쳤다.

 

아주머니가 놀라서 아기를 끌어안고 보호하자, 아주머니를 억지로 떼어내 방바다에 앉힌 후 다시 해머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유영철은 아기는 그대로 냅두고 사건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미 연쇄 살인 프레임이 형성된 마당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난 살인 사건과의 유사성을 피하려 유영철은 지하실에서 찾은 곡괭이를 들고 금고를 부수려고 한 흔적을 만드려 힘껏 내리쳤다. 그러던 중 손에 상처가 나 피 몇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DNA 추적을 받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남긴 셈이다. 당황한 유영철은 궁리 끝에 집 전체에 불을 질러 증거를 멸실시켰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현장에서 유영철의 뒷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입수되었고 뉴스와 신문에 크게 실렸다. 또 이 때 경찰은 보안유지 태세에서 개방태세로 전환한 후 범인의 족적과 신발 사이즈 및 신발 브랜드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극도로 겁에 질린 유영철은 이 후로 주택가 침입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살인을 계획했다.

 

3. 연쇄 살인 휴지기 : 찜질방 좀도둑질, 윤락녀 갈취의 시기

 

감옥에서 받은 사회 정착금이 다 떨어져간 유영철은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주택가 살인시 돈을 얼마 들고 나올까 후회도 했지만, 잡히지 않기 위해서 유영철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때부터 유영철은 가짜 경찰 신분증을 위조하여 좀도둑질과 공갈 및 협박을 통한 갈취를 일삼으며 금전을 마련했다.

 

우선은 찜질방을 돌며 잠든 사람의 옷장 열쇠를 몰래 빼내 지갑을 터는 수법으로 좀도둑질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1월 20일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10대 청소년의 지갑을 털려다 종업원에게 덜미를 잡혀 경찰에 체포된다. 좀도둑으로 입건된 유영철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여죄를 캐다가 자신의 연쇄 살인이 발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합의를 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 했지만, 화가 난 피해자는 합의 없이 처벌을 원했다.

 

다급해진 유영철은 경찰관이 목격자와 절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옷핀으로 수갑을 풀고 있는 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힘껏 도망쳤다. 그러나 곧 뒤쫓아온 경찰관한테 잡히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아무도 연쇄살인에 대해선 묻지 않았고, 구속 영장도 기각되어 유영철은 풀려 나왔다.

 

고작 좀도둑질로 연행된 범인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점에서 어떤 수상한 점도 눈치채지 못한 경찰의 둔중함과,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만 굴릴 줄 알았지 명민하게 사고하지 못한 채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조인들의 나태한 아둔함이 빚은 참극이었다. 풀려난 유영철이13명을 더 살해했으니 말이다.

 

이 사건 후 유영철은 찜질방 좀도둑질을 그만두고, 윤락녀들을 여관으로 불러 윤락 행위 혐의로 체포하겠다며 가짜 경찰관 배지로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유영철은 여성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몇몇 여성들은 수갑을 채운 후 숙소에 쫓아가 집에 있는 금품까지 빼앗는 범죄를 저질렀다. 파렴치하기 그지 없었다. 유영철을 경찰관이라고 안 윤락녀들은 감히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

 

 

4. 여성 납치 살해 – 총 피해 사망자 : 12명

 

유영철은 윤락녀들로부터 갈취를 하는 와중에, 자신에게 이혼을 안겨준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강화해갔다. 하지만 아내를 죽이면 곧바로 수사선상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 것을 염려해, 차마 그러진 못했다. 대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해 대리만족과 복수심을 충족시킬 계획을 세운다.

첫 희생자는 전화방에서 불러낸 24살 여성이었다. 신촌의 한 쇼핑센터 앞에서 만난 전화방 여성에게 가짜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윤락 행위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한 후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피해자가 도망치려 하자,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가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

이번 범행 장소는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에 사체를 처리해야 했던 유영철은, 시신을 토막내 택시를 타고 인근 야산으로 가 파묻었다.

그 후 한달이 채 가기전 4월 초엔 역시 전화방에서 스물 일곱살 여성을 불러내 자기 원룸으로 가 성관계를 하려 했다. 그런데 여성이 콘돔 사용을 요구하자, 유영철은 기분이 나쁘다며 화장실로 여성을 불러내 해머로 머리를 내리친 후 역시나 시체를 토막내 야산에 암매장했다.

그는 2004년 7월 15일 검거되기까지 비슷한 수법으로 10여명의 여성을 더 살해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를 마신 미국의 연쇄살인범 체이스(Chase)의 엽기적인 모습을 흉내내려, 여성 피해자의 장기 일부를 믹서기에 갈아 먹기도 했다. 걍 사이코패스다.

 

5. 노점상인 살해 – 피해 사망자 : 1명

 

여성들을 살해하던 와중에, 유영철은 2004년 4월 13일에 돈을 마련하려 황학동 벼룩시장에 갔다가 불법CD와 비아그라를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그는 노점상에게 접근해 가짜 경찰 신분증으로 협박한 후 수갑을 채우고 돈을 갈취하려 했다. 그런데 노점상이 왠지 자신을 수상하게 의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피해자를 노점용 영업 차량에 결박해놓고는 원룸에 가서 칼과 해머를 가져와 잔인하게 살해했다. 차문을 열자마자 칼로 피해자의 얼굴을 20여차례 이상 마구 찌르고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죽인 것이다. 살해 후에는 인천으로 가 피해자의 손목을 잘라 바다에 버리고 차안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지른 후 도주했다.

 

6. 검거된 사이코패스

 

실종된 출장 안마 여성의 다급한 전화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

 

2004년 7월 12일, 서울 관악구에 사무실을 둔 출장 마사지 업체에 30대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신촌 로터리로 안마 여성을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27살의 여성 김하영(가명)씨가 보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업소로 전화를 건 여성이 다급하게 비명 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

전화를 받은 포주가 다시 통화를 시도해봤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그 후로 김하영씨는 연락이 두절되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포주 노씨는 과거 사건 관계로 안면이 있는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실종 사건을 이야기했다. ‘사건’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진 양형사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어마어마한 연쇄살인을 파헤칠 실마리가 되리라곤 그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이 전에도 이미 세 차례의 출장 안마 여성의 실종 신고가 경찰서에 들어온 바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종종 연락 없이 잠수를 타는 유흥업 종사 여성의 충동적 패턴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일단 기다려보자’며 신고자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세 건의 실종 신고 중 한건만이라도 제대로 수사되었다면 유영철은 좀 더 일찍 잡혔을 수도 있겠다.

 

격투 끝 검거, 그러나 도주

 

김하영 씨를 호출했던 번호가 7월 15일 새벽 2시에 휴대폰에 뜨면서 벨이 울렸다. 신촌 모 편의점 앞으로 안마사를 보내달라는 목소리는 며칠전 김하영 씨를 찾던 30대 남성의 그것과 같았다. 신촌에서 잠복 중인 양형사에게 연락한 안마소 주인과 친구들은 눈에 띄지 않게 여성 안마사를 따라갔다.

유영철은 몇 번이나 안마사와의 접선 장소를 바꿨다. 그러다 마침내 신촌 G마트 앞에 나타난 유영철을 경찰과 업소 주인 일행이 덮쳐 검거했다. 유영철은 격렬히 저항하며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는데, 재빨리 경찰이 손가락과 숟가락으로 입안에 넣으려던 것을 꺼냈다. 그건 출장 안마 업소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 뭉치였다.

이때까지도 양형사는 이 남자가 희대의 살인마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동수사대로 연행되어 온 유영철이 전과 11범의 전과자이자 지난 1월 신촌 찜질방 소액 절도 사건의 피의자로 불구속 수사 상태란 것을 안 경찰들은 “이거 완전 도둑놈이군”하면서 한마디씩 내뱉었다고 한다.

유영철에게 전화로 불러낸 여성 안마사들을 어떻게 했냐고 추궁하자, 그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

“안마사들은 잘 모르겠고요, 요새 발생한 서남부 살인 사건 그거 다 제가 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은 유영철에게 서남부 사건들의 구체적 내용을 말해보라 했지만, 유영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야, 너 그 휴대전화는 어디서 났어?”

“아 그건 7월 13일 새벽4~5시에 길을 걷는데 지나가던 차가 창문을 열고 봉투를 던졌어요. 그 봉투 안에 휴대전화가 들어 있었어요.”

“응? 12일에도 그 번호로 안마사를 불러낸 적이 있고, 그 안마사는 실종상태인데?”

“…”

유영철이 당시 몰랐던 사실이 있다. 출장 안마 업소의 전화번호는 각기 다른 전단지에 여러 다른 번호로 적혀있지만, 실상 모두 한 업소의 같은 전화번호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12일에 전화한 업소와, 14일에 전화한 업소가 다른 줄 알고 지어낸 유영철의 거짓말이 드러난 순간이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경찰이 유영철의 횡설수설하는 얘기를 다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던 중 유영철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간질 증세를 일으켰다.(물론 꾸며낸 발작이다) 취조하던 두 형사는 당시 인권이 강조되던 정권이라 재빨리 수갑을 풀고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며 친절하게 대해줬다. 곧 안정을 찾은듯 보인 유영철은 고분고분해졌고, 11명을 살해해 암매장했으니 현장으로 가자고 경찰에게 제안했다. 두 형사가 망설인 끝에, “그래, 가보자.”하며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허점을 노린 유영철이 온 힘으로 경찰관을 밀고 도주했다.

 

11시간 만의 재검거

 

하지만 다행히 유영철은 11시간만에 재검거 되었다. 영화에서처럼 풀려난 사이 추가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검거된 유영철은 자신의 범죄 일체를 자백했고, 무시무시했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7. 영화 <추격자>의 내용은 얼마나 실화와 닮았나?

 

 

1) 안마소 업주의 역할

 

 

 

 

김윤석이 분한 영화 속 엄중호는 전직 경찰이었지만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고 현재는 출장 안마소 업주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던 중 하나 둘 안마소의 여성들이 실종되고, 이를 찾아나서다 연쇄 살인범 지영민(하정우 분)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엔 그냥 자기 업소 여성들을 팔아넘긴 놈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전직 형사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사건을 파헤치다 엄청난 사건의 마각을 목도하며 사건을 푸는 주된 인물로 기능한다.


영화 속 엄중호는 실제 유영철 사건에서 출장 안마소 업주와 친구들이 일정부분 검거에 기여한 것을 참조해 만들어낸 캐릭터로 보인다.

 

2) 유영철의 범행과 검거까지의 과정

 

 

 

 

 

유영철은 원룸에 살며 범행을 계획했지만, 영화에선 한 버려진 단독주택을 근거지로 삼아 범행을 저지르는 설정으로 나온다. 그리고 토막낸 시체들을 유영철은 각종 야산에 파묻었지만, <추격자>에선 바로 그 단독주택 앞마당에 가득 암매장 한 것으로 나온다.

또 실제로 유영철이 노부부를 살해한 후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사건 간에는 약 1년의 텀이 있지만, 영화에선 며칠사이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그린다.

검거의 실마리가 잡히는 부분은 실제 사건과 비슷하다. 출장 안마업소의 여성이 하나 둘 실종되고, 이를 수상히 여긴 포주가 경찰에게 신고를 하면서 유영철이 검거되는 구조는 얼추 비슷하다.

다만 영화에선 유영철이 처음에 경찰서에 잡혔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 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나고, 풀려난 후 집에 감금되어 있던 김미진(서영희 분)이 탈출해 슈퍼에 숨어들자 쫓아가 추가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는 실제 사건을 많이 각색한 것이다.

실제 사건에서 유영철은 연쇄 살인 와중에 경찰에게 두번 잡히고 두번 도주한다. 첫번째 잡혔을 때는 신촌 찜질방에서의 소액 절도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구속 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나 추가적으로 12건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 후 안마소 업주의 신고로 붙잡혔다가 도주해 11시간만에 재검거 되었을 때는 영장 기각 없이 그대로 구속되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따라서 영화 <추격자>는 실화 속 유영철의 첫번째 검거와 두번째 검거를 마블링 하여 하나의 플롯으로 압축시켜 전개한 것이다.

 

 

3) 영화 속 백발의 프로파일러, 그는 누구?

 

 

 

 

 

영화에선 백발 성성하고 노회한 프로파일러로 보이는 노인이 유영철을 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영철의 여자 관계를 집요하게 캐물으며 경찰들에게 유영철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 속 캐릭터는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김용화 경무관을 모티프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용화 경무관은 유영철이 안마소 업주들의 신고 후 검거되었을 당시 직접 유영철을 신문했다.

 

수사부장 경무관은 군대로 치면 장성급 스타에 해당하는 직급이다. 거대 서울경찰청 형사들의 최고 우두머리였다. 이런 그가 직접 신문을 해 유영철의 자백을 이끌어낸다. 김용화는 프로파일리을 주제로 범죄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였다. 차분하고 집요한 김용화의 날선 질문에 유영철은 결국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도 자신이 한 짓이란 것을 털어놓는다. 그 후 현장검증이 이루어졌고, 유영철은 범인으로 확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