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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1년]교회 일이 하나님의 일인가?

 

                    

  

예전에 사랑의 교회에서 하는 전도 강의를 학교 선배가 보내준 mp3파일로 들은 적이 있다. 뜨겁고 강렬했던 강의는 신앙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다. 한참 신나게 은혜를 받던 도중 기독인의 직업관에 대한 강사 목사님의 멋진 멘트가 있었다. “기독인은 직업을 가질 때 시간 여유가 많은 것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에 나와 함께 노방전도도 하고 섬길 기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업무량이 많은 직업을 택해야 한다면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것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해서 주의 사업이 큰 도움이 되도록 말이죠.” 아멘!을 마음으로 외칠까 하다가 약간 의심이 생겼다. 그래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강의의 중심적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나이가 22살. 2년 전의 일이다.

2년이 흐른 지금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약간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메시지의 표면적 의미를 관찰하면 별반 문제될 것이 없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전도와 교회 봉사에 열심으로 참가하고, 정 그런 시간 내기가 어렵다면 헌금을 많이 하여 교회 재정에 보탬이 되는 성도의 삶, 그것을 기준에 두고 직업을 택하라!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메시지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약간 꺼림칙한 의견과 마주하게 된다. 직업 자체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종교인(목회자)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직업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신앙적 확신이 있다면 기독교인의 직업관이 전술한 그것으로 매듭지어질 수는 없다. 설령 돈을 적게 벌고 업무량이 많은 직업일지라도, 그래서 평일에 교회 봉사를 할 시간이 좀처럼 없고 헌금을 적게 낼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활용이자 적극적인 신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기독교적 직업 선택의 기준에 저촉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왠지 교회 밖에서의 생계를 위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애매한 신앙 감정이 우리 사이에 팽배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여기서 비롯된 신앙 인식은 자연스레 하나님의 일을 교회 활동으로 한정하는 귀결에 도달한다. 그리고는 앞에서 서술한 직업관 - 시간을 많이 내서 교회에 자주 올 수 있는 직업이든지, 그게 힘들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 헌금할 수 있는 직업이 기독교인에게 추천할 만하다는 관점 - 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짚어보아야 할 지점은 과연 교회 밖, 세상에서의 활동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일 바깥의 범주에 속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직업을 통해 전도를 하면 된다’는 차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전도도 중요하지만 과연 전도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나의 직업적 행위 자체로는 하나님의 일로서의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없는가, 이게 질문의 요지이다.

교회와 세상은 다르다. 동시에 같아야 한다. 영역에 있어서 교회와 세상은 분명 상이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고 세상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교회와 세상을 관류하여 흐르는 삶의 원리는 동일해야 한다. 물론 그 원리가 표출되는 현상형태는 영역마다 다르겠지만 본질적 내용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의 한 컷을 들여다보자.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성경은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 예수를 교회에서만 믿고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다? 그럼 교회 일만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라. 그러나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는(시24:1)말씀에 근거하여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라면,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인정하라. 그런 맥락에서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격려하는 게 아닐까. 산뜻하고 인정받는 교회 봉사는커녕 더러운 화장실 청소와 굴욕적이고 비천한 노동을 강압적으로 행해야 하는 로마의 노예에게 바울은 그 일이 하늘의 상급을 가져다 줄 것이라 이야기한다.(골3:22-24) 아무런 목적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고대 노예의 수탈당하는 노동마저도 성실과 주를 두려워하는 태도로 이루어질 때 그것 자체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산 제사요 하늘의 보화가 부어지는 그릇이라는 게다. 그렇다고 바울이 고대 노예제를 옹호했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직업이든(명백히 부도덕한 일이 아니라면. 노예를 부리는 주인은 부도덕하다. 반면 그 부림을 받아 폭력 아래서 일하는 노예는 부도덕하다 할 수 없다) 중심의 마음가짐에 따라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반대로 아무리 교회에서 행하는 섬김과 봉사라도 동기와 목적이 자기 의, 자신의 명예, 사적 이익이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다. 교회 일이 순식간에 하나님과 대립하는 경건치 못한 ‘세상 일’이 되는 것이다. 교회 일이 세상 일이 되는 지독한 역설과 우리는 교회 사역에서 끈질기게 조우하지 않던가?

이제 글 제목에 걸어 놓았던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교회 일은 하나님의 일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원리로 움직이느냐에 종속되어 대답은 달라진다. 그럼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될 수 있다.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종말의 오메가 포인트에서 역진하는 하나님 나라”의 근사치에 무한히 접근하는 거대한 회복과 샬롬의 섭리에 동참한다면 세상에서의 일(직업)은 하늘의 상급이 큰 하나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