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지은 새 성전, 하나님의 자녀들
온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점에서 우주가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됩니다(히3:4).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내뿜는 광휘는 죄의 잿가루가 뿌려진 탁한 대기 속에서 인간의 시야를 벗어납니다. 과연 만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며(롬3:23) 피조세계 전체가 탄식과 고통 속에서 해방을 기다립니다.(롬8:21-22)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스리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통치 방식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의 다스림은 인간의 영혼을 통한 내적 다스림이 아닌, 자연 법칙을 통한 외적 다스림으로 전환됩니다. 인격적 소통이 불가능한 고집 센 황소를 코뚜레에 메어 억지로 끌고 가는 형상이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소통 경로는 끊겼습니다. 결국 역사의 갈피 갈피를 수놓았던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섭리의 무의식적 도구로 역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이 본래의 성전적 질서로 회귀하기를 갈구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죄의 안개를 걷어내고자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출4:22)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레26:12;고후6:16-18)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참 인간들의 공동체를 세우신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또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구약의 건물 성전은 속죄제사를 통해 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올바른 기능을 하는(죄인들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성전이 성전(이스라엘 공동체 및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옛언약의 이스라엘과 건물로서의 성전은 섭리적 허용 가운데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죄 해결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은 우상들의 복마전으로 전락합니다.(겔8:3-14) 또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통치를 반영해야 할 다윗 왕조는 이방인과 과부, 고아에 대한 압제와 도둑질과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우상 숭배(렘7장;사1장) 등 사회 윤리와 개인 윤리의 총체적 파탄을 맞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성전과 공동체로서의 성전인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수의 심판을 받습니다. 타락한 성전이 공동체로서의 성전을 망가뜨린 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단 신탁입니다.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말씀을 전합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2-16)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계시입니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수년에 걸쳐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다윗 왕조는 BC587에 멸망했습니다. 예언은 좌절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나단의 신탁은 종말에 다윗의 후손(삼하7:12)으로 오신 하나님의 참된 아들(삼하7:14),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됩니다.
다윗 왕조가 실패한 의와 사랑의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하며 왕이신 예수의 보좌는 영원합니다.(삼하7:16;히1:8) 그리고 나단의 예언대로, 예수는 하나님을 위한 새로운 집, 즉 새 성전을 건축합니다(삼하7:13). 예수의 새 성전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입니다.(막14:58;요2:19) 예수는 나단 신탁의 첫 번째 부분인 다윗 왕국에 대한 예언을 이스라엘 민족에 기초한 가시적 정치 조직의 부활로 이해하지 않으셨듯이, 새 성전 건축에 관한 예언도 나무와 돌로 구성된 물질적 성전의 가시화로 이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건물 성전의 기능이었던 죄 사함과 죄인들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십자가 제사(히9장)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실패한 사명을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부수심으로써, 즉 친히 기존 성전의 기능을 능가(surpassing) 대치(replacement)하심으로써 이루었습니다.
글의 앞 부분에서 죄 사함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전이 공동체로서의 성전을 만든다는 구약의 원리를 언급했습니다. 이 원리는 새언약의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단지 성전적 기능을 완벽히 수행한 예수 그리스도가 기존의 건물 성전을 대체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성전 된 예수 그리스도(요2:21)는 공동체로서의 성전,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창조합니다. 결국 건축자의 버린바 된 모퉁잇돌 예수(시118:22)가 창조한 새 성전은 성도들(교회)인 것입니다.(엡2:20,21;벧전2:4,5) 이러한 예수의 성전 이해는 서신서 곳곳에서 계승되어 나타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너희 몸은 …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2:4,5)
예수의 성전 된 몸은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합니다.(요2:21-22) 예수의 몸은 당신의 십자가 사역을 기반으로 창조된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community)로 확장됩니다. 이것이 예수의 몸 된 교회입니다.(엡4:12-16) 그리고 이 교회가 예수께서 지으신 새 성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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