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단말기 자급제의 문제점과 실패원인

Bringeld 2014. 5. 9. 15:29



단말기 자급제, 일명 블랙리스트제는 2012년 5월부터 시행되어온 정책입니다. 이 정책은 소비자가 이통사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휴대폰을 이통사의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구입하던 것과 달리, 휴대폰 자급제를 통한 구입은 보통의 전자제품 판매처나 온라인 마켓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급제로 구매한 휴대폰은 아무 이통사에서나 개통이 가능합니다. 즉 휴대폰을 대형마트나 제조사 매장 등에서 구입하여 통신사의 대리점, 판매점에 가서 원하는 요금제로 가입하는 것이죠. 또 기존에 사용하던 핸드폰의 유심을 빼서 자급제로 구입한 휴대폰에 끼우면 됩니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된 배경은, 이통사 3사가 독과점하던 휴대폰 유통구조를 혁파함으로써 이통사간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그렇게 하여 통신비를 내리려는 정부의 복안이 깔려있었습니다.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구매하지 않고 자급제로 휴대폰을 산 소비자들이 어느 이통사로 갈지 모르니, 이통사들이 앞다투어 저렴한 요금제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들려 할 거란 계산이었죠. 


그럼 이 단말기 자급제는 제역할을 했을까요? 답은 아니오 입니다. 현재 가계 통신비를 줄여주는 것은 알뜰폰이지 자급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아직까지도 대리점, 판매점에서 휴대폰을 구입하고 이통사에 가입하고 있구요.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조금이 지급될 수 없는 단말기 자급제의 구조적 결함에 있습니다. 단말기 자급제를 통해 출시되는 핸드폰, 스마트폰들은 이통사의 보조금이 없습니다. 당연하죠. 이통사는 자신들의 대리점, 또는 판매점에서 판매되는 폰들에만 자신들의 보조금을 얹어줄테죠. 그러니 일반 하이마트나 삼성 모바일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폰에는 이통사의 보조금이 없습니다. 


이러면 소비자가 구매하게 되는 단말기 가격은 자급제를 통해 샀을 때 더 높습니다. 출고가에서 이통사의 보조금을 뺀 것이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단말기 값, 즉 할부원금이었는데, 단말기 자급제에선 이통사의 보조금이 없으니 휴대폰의 출고가가 그대로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단말기 가격이 되어버립니다. 당연히 휴대폰 자급제를 통한 구입이 더 비쌀 수밖에요. 



이런 제도의 맹점이 시행 초기에도 지적되었지만, 높아진 단말기가격을 통신비인하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게 당시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나요? 통신비는 그대로입니다. 알뜰폰을 구매하면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지만, 여하간 일반 스마트폰을 사용시 체감되는 통신비 부담은 여전합니다. 


그럼 왜 통신비는 애초 예상을 빗나가서 이렇게 그대로 된 것일까요? 이 또한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통신비가 비싼 이유는 한국의 메인 통신망을 이통사 3사, KT,SKT,엘지 유플러스가 과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통신비 경쟁이 치열해져야 통신비가 인하될텐데, 그렇게 되려면 가장 좋은 것은 제4의 통신사를 통신 시장에 입장시키는 것입니다. 통신망 공급자가 늘어나야 공급자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래야 통신비도 인하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휴대폰 자급제, 즉 단말기 자급제에서는 이통3사의 숫자가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KT,SKT,LG 유플러스의 3개 통신사가 과점하고 있는 상태이니, 통신비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기는 애초에 시스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죠.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구입하든, 하이마트에서 휴대폰을 구입하든, 소비자가 선택해야 하는 통신 서비스는 여전히 3개밖에 없기 때문에, 통신비의 획기적인 인하가 발생할 수는 없는 겁니다. 


외려 보조금 없는 단말기로 인해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되고, 자급제 휴대폰은 아주 저사양의 스마트폰이 아닌 이상에야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죠. 특히 최신 스마트폰을 사고 싶어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보조금 없는 자급제 휴대폰은 가계경제에 재앙 같은 존재들입니다. 보조금 받고 대리점, 판매점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사는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 또한 휴대폰 자급제의 실패를 초래하는 데 기여합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자급제로 꾸준히 발표하는 제조사로는 소니가 있는데요. 이번달 19일에 판매 개시가 예정된 소니의 엑스페리아 Z2도 자급제로 판매합니다. 하지만 출고가가 70만원이 넘는 최신 고가 스마트폰이라 흥행엔 실패가 예정되어 있죠. 이러한 자급제의 한계를 깨달았는지, 소니는 이번에 KT와 제휴를 맺고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즉, 엑스페리아 Z2를 구매한 후 KT 대리점에 가서 67무한 요금제 이상을 가입하면, 24만원의 구매할인 혜택, 즉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이 경우 출고가79만9천원에서 보조금 24만원을 빼면 총 55만9천원까지 단말기 구매 원금, 즉 할부원금이 내려갑니다. 사실 이렇게 되면 이미 자기 본질을 상실한 반쪽짜리 자급제이죠. 이통사와 제휴를 맺는 순간, 자유로이 이통사를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KT의 65요금제라는 비싼 요금제를 써야만 보조금을 받아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되니까요. 소비자들은 실질적으로 엑스페리아 Z2를 살 때 KT에만 가서 개통을 하게되고, 그것도 비싼 요금제로 개통을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야 모든 통신사를 선택할 수 있지만, 보조금 없는 통신사에 가서 엑스페리아Z2를 개통할 호갱 소비자는 없지요.


여하간, 단말기 자급제는 정부가 대표적으로 제도적 취지를 실현하지 못한 실패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시행될 단통법의 효과는 어떨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