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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인가제 폐지, 단통법 무력화되나?

1. 요금 인가제란?


요금 인가제는 정부가 이통사의 통신 상품 가격을 규제하는 장치이다. 즉, 통신 상품 가격을 이통사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자유시장경제에서 정부가 직접 상품 가격에 관여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에서 상품 가격은 시장에서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의 경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독과점 상태의 시장이라면, 가격을 형성하는 공급자간의 경쟁이 저하되어 소비자 편익이 기업 편익으로 흡수되는 불경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동통신 시장에서 요금 인가제를 두어온 것이다. SKT가 5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나머지 시장은 각각 KT와 LG 유플러스가 3:2 비율로 나눠먹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독과점 체제에서 완전경쟁적 가격 구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2. 요금 인가제 폐지 논의가 나오는 이유는?


그럼 소비자에게 요금 인가제는 좋은 것이 아닐까? 왜 자꾸 요즘 인가제 폐지 논의가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실 요금 인가제가 본연의 임무, 즉 시장 독과점 체제가 발생시킬 수 있는 소비자 편익 저해를 방지하는 것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요금인가제도는 각 이통3사가 비슷한 수준의 비싼 요금제 담합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SKT의 신규 요금제를 정부가 인가하면, KT,LG유플러스가 그와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한다. 즉, 후발 사업자들이 요금제 인하를 통해 SKT와 맞서기 보다는, 비슷한 요금제로 현상 유지를 택한다는 것이다. 이미 독과점 체제이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굳이 요금제를 파격적으로 인하해서 매출 감소와 그에 따른 주가 하락의 위험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 3위 이통사인 LG 유플러스만 하더라도 20%의 점유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상태여도 기업 이윤 확보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부는 1위 사업자인 SKT의 신규 요금제가 상당한 고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의 없이 대부분 수용한 점도 인가제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3G에서 4G로, 거기서 또 LTE-A로, 거기서 또 광대역 LTE-A로 품질을 높인 통신 서비스를 출시할 때마다 통신비는 치솟았다. 그럼 이러한 통신비 상승에 인가제를 실시하는 정부가 태클을 걸고 통신비 상승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가계 통신비 부담은 여전히 컸다. 


결국 인가제로 인해 요금제 부문에서의 경쟁 활성화는 사라지고, 요금제는 비슷한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 되는 결과만 낳았던 것이다. 그래서 요금 인가제 폐지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3. 그럼 요금제 인하 폐지가 답인가? 

        단통법(☞ 보조금을 위해 태어난 단통법(단말기유통개선법)이란? - 단통법 전격해부 참고) 무력화와는 무슨 상관인가?


이렇듯 별다른 효험이 없는 인가제를 계속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니, 현 정부는 인가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양상이다. 아무리 늦어도 미래부 장관이 개각을 통해 교체되면 실시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지만 인가제 폐지는 애초 의도했던 시장 경쟁 활성화는 커녕, 외려 보조금 대란만 일으키며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단통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우선 요금 인가제가 폐지되면 1위 사업자인 SKT가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이 신고만으로 요금제 상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는데, SKT는 요금 인하로 신규 가입자를 모집하기 보단, 이미 보유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망내통화 무제한, 결합상품 등을 제공해 시장 점유율 굳히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왜냐하면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요금제 인하는 매출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미 50%의 점유율을 가진 1위 사업자 입장에서는, 매출 타격을 최소화하면서 1위 자리를 수성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고, 그렇게되면 요금제 인하가 아닌 전술한 망내통화 무제한, 결합상품 등의 기존 고객 유지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SKT의 굳히기 작전에 KT와 LG 유플러스가 요금제 인하로 경쟁을 걸어갈 가능성은 낮다. 요금제에 맞대응하는 것은 매출 하락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만약 통신시장에서 가입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요금제에만 있다면, 후발주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요금제 인하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통신시장에는 보조금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보조금을 제공해 가입자로 유치하면, 장기적으로 통신비에서 거두어들이는 매출 상승의 효과를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단기적으로 마케팅 비용은 상승하겠지만, 가입자 유치에 따른 매출 증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후발 사업자들은 요금인하 동참이 아닌, 훨씬 저렴한 방식인 보조금 경쟁으로 다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보조금 차별 금지와 보조금 공시 의무를 통해 보조금으로 문란해진 이통사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던 단통법의 취지는 맥없이 꺾이게 된다. 이통사들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법 보조금을 살포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단통법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받는 부정적 인센티브가, 단통법을 어기고 보조금을 살포해 얻는 긍정적 인센티브를 압도하지 못한다면, 대기업인 KT와 LG유플러스는 보란듯이 보조금 대란을 일으킬 것이다. 


결국 인가제 폐지로 요금경쟁을 시켜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애초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요금인가에 대한 최종적 권한마저도 정부가 제 손으로 놓아버리게 되는 꼴이다. 단통법 무력화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