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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3년]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 문화산업의 기만적 지배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근대성 비판의 핵심은 지배의 원리에 관한 것이다. 자기유지의 목적에 모든 것을 종속시킴으로써 목적에의 합리적 사유를 상실한 도구적 이성은 지배의 계기이자 원리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 도구적 이성은 체계화의 미명 하에 동일자의 원리로 만물을 획일화하고 주체로 환원한다. 요컨대 주체의 자기유지에 배타적으로 복무하는 도구적 이성은 만물에 추상적, 체계적 통일성을 부여하고 이 동일성의 원리를 매개로 세계를 지배한다.

 

이러한 근대적 지배는 문화의 영역에서도 마각을 드러낸다. 이 때의 지배는 겉으로 드러나는 야수적이고 폭압적 지배가 아닌, 교묘한 기만적 지배이다. 즉 피지배자가 지배의 원리를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해지는 지배이다. 이렇듯 문화영역에서 기만적 지배가 가능해진 이유는 문화가 시장에 의해 형성되는 산업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은 문화상품의 생산과 회전에 기반하므로 온전히 시장의 원리에 종속되는데, 이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겉보기에 자유로운 원리에 의해 직조되며 따라서 상품의 소비자들은 자발성의 외피를 진정한 자율로 착각하고 문화를 영위하게 된다. 다시말해 자발의 외피를 두른 시장의 지배가 문화산업에서 일어나는 기만적 지배이다. 한편 문화산업에서 일어나는 기만적 지배는 역시나 근대의 지배이기에 동일성의 원리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문환산업의 지배란 근대의 동일성의 원리에 근거한 기만적 지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구적 이성의 동일화 원리는 문화산업 영역에서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문화상품의 생산으로 관철된다. 영화, 라디오, 잡지는 전체적으로 엇비슷한 내용의 상품을 만듦으로써 획일화된 문화 체계 형성에 기여한다. 영화의 플롯은 기승전결의 기성 규격에 맞추어 배우와 배경만을 바꾸며 반복된다. 여러 유형의 인기 가요나 인기 배우, 멜로물들이 본질적 차이 없이 무한히 순환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획일화된 상품의 범람이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도 문화상품을 강매한 적은 없다. 모두가 시장에서 소비자들에 의해 구입된 것들이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의 표면만을 관찰하면 획일적인 문화 상품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은폐된 채 작동하는 거대 자본의 조종과 통제 의도를 통찰해야 한다. 문화 상품은 자본가들과 자본에 복무하는 문화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부터 생산까지 철저히 의도적으로 통제되고 지배된다. 경제적 강자의 지배의도는 이미 회피할 수 없는 촘촘한 방식으로 문화상품의 곳곳에 투사되어 있다.

 

이런 과정으로 생산된 획일적 문화상품들이 시장에 진열되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구매한다. 문화상품의 생산단계에서 발휘된 지배력은 이제 소비를 매개로 소비자들의 내면에까지 힘을 뻗친다. 획일화된 상품을 소비를 하는 와중에 소비자들은 시나브로 획일화된 욕망에 동화되며 규격화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된다. 결국 소비자들도 거대한 문화상품의 생산과정에 포획됨으로써 표준화된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문화상품에 의한 대중 생산과 대중 지배는 시장에서 이루어지기에 정작 대중들은 지배를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의 과정은 이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문화상품 생산의 이면과 욕구의 조작을 간파하기에 상품은 현란하고 소비의 즐거움은 크다. 상품 소비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유흥의 핵심적 요소이다. 유흥이라는 강력한 환각제의 작용으로 인해 문화상품 소비에의 어떠한 저항도 철저하게 분쇄된다. 단지 유흥과 기분전환을 위해 찾은 영화관에서 대중들은 비판적 사유를 멈춘다. 정신적 긴장은 가능한 회피되며 고통스러운 고민은 유흥의 방해물일 뿐이다. 유흥은 도피가 되며 도피는 마지막 남아 있는 비판의식, 저항의식으로부터의 도망침이다. 유흥이 제공하는 해방감이란 이렇듯 사유로부터의 해방이며 저항으로부터 해방이자 동시에 지배로의 철저한 귀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