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4년 이전 에세이

[2012년]대화로 풀어본 성전용어

밑에 글은 "대화"의 형식을 사용해서 성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굵은 글씨로 쓰여진 것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옹호의 주장이고, B의 말은 그것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A :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배 때 임하시는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B : 성전의 뜻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집이고 따라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성전이라 칭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 예배당에만 계시지 않는다. 만물에 편재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배당만을 성전이라고 하며 구별된 장소로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만물이 그분의 집이요 그분의 성전이다. 그래서 이사야 66장 1절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A : 물론 하나님은 시공간의 모든 지점에 계신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특별히” 거하시는 장소로서 성소, 성전이 나온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가시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이 성전이었다. 따라서 특별한 장소를 선별해 예배의 처소로 삼고, 성전이라고 칭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B : 맞다. 구약까지는 구별된 물리적 장소로서의 성전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뒤로 구약의 건축학적 성전은 자신의 기능을 다하고 역사의 무대를 내려왔다. 건물로서의 성전이 가졌던 본래 기능은 속죄제사를 통해 죄로 이격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동물의 피가 어찌 속죄기능을 할 수 있었으리요마는(히9:9b), 그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십자가 제사(히9:12)에 대한 예표로서(히9:9a) 의미와 기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죄 해결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출25:8;신12:5;왕상8:13;9:3) 영광스러운 임재(출40:34-35;왕상8:10-11)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출25:22b),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사가 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성전에서 인간 제사장에 의해 드려지던 속죄제사가 그리스도의 스스로 대제사장 되심과 제물 되심의 완벽한 십자가 제사로 인해 폐지되었다. 또한 예수가 친히 성전이 되어(요2:21)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였으며(요1:14), 승천 이후에는 성령께서 우리 각자와 성도들의 공동체에 임하심으로써 구약의 건물 성전 위에 내려앉던 하나님의 영광이 믿는 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임하게 되었다(행2:33). 이런 맥락에서 신약에서는 우리의 몸(고전6:19)과 성도의 공동체(고전3:16-17;고후6:16;엡2:21-22)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지으신 새 성전은 결국 교회인 것이다(삼하7:11-16).

이러한 구약과 신약을 관류하는 계시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신학적 테마 안에서 칼빈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 건물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길일진대 우리는 여기서 그 건물들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여겨서 그곳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신다거나 - 여러 세기 전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 혹은 교회 건물들에 무슨 은밀한 거룩함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서 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더 거룩하다는 식의 생각을 갖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들이 참된 하나님의 성전들이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부르려면 우리 속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어리석은 생각일랑 유대인들이나 이교도들에게 버려두자. 우리는 장소의 구별이 없이 "영과 진리로"(요4:23) 주님을 부르라는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기도를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이 세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진리가 가리어져 있었고 그림자 아래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살아 있는 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 있으므로, 물질적인 성전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성전 벽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참된 성전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훈련시킬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와 스데반은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신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사66:1 ; 행7:48-49) "

 

<기독교 강요> 제3권 20장 30.<<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 존 칼빈

 

A : 우리가 예배당에서 구약의 피 뿌리는 희생제사를 드리자는 게 아니다. 구약에서 성전은 예배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예배의 공간을 귀히 여긴 솔로몬과 다윗, 그리고 예수님이 계셨다. 따라서 그분들의 발자취를 본받고자, 현대 교회에서 예배의 공간을 성전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 건축을 하라며 헌금을 독려할 수 있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내라며 교회당으로 오라고 설교할 수 있는 것이다.

 

B : 구약의 건물 성전은 예식 공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 성전을 사모하면서 성전 건축을 위해 재물을 모은 다윗의 열정과,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의 열심은 신앙적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도 예배의 처소를 귀히 여길 줄 알아야겠다. 그러나 예배의 처소가 귀한 것과 예배의 처소인 예배당이 곧 구약의 성전인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배공간이란 범주는 성전보다 큰 범주이다. 마치 자동차라는 범주가 소나타보다 큰 범주인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예배당도 예배공간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나 같은 범주에 포함되는 두 개의 요소가 동질의 것은 아니다. 자동차라는 범주에 소나타와 제네시스가 포함된다고 해서, 소나타와 제네시스가 동일한 성질의 사물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성전에 대한 구약 인물들의 열심은 성전을 포괄하는 예배공간이라는 범주에서 논해져야 한다. 즉 다윗, 솔로몬 등의 인물들이 가졌던 성소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공간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신앙적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 적절한 것이다. 그들이 예배공간을 귀히 여겼으니, 우리도 귀히 여기자, 이 정도는 괜찮지만, 그들이 귀히 여긴 예배공간이 성전이니 우리의 예배공간인 예배당도 성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소나타가 자동차이고 제네시스도 자동차이니 소나타는 곧 제네시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듯이 말이다.

 

A : 그럼 엄밀한 구약적 의미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예배공간을 성전이라는 용어로 사용해도 되지 않나? 원래 언어란 자의적인 것이니까.

 

B : 좋다. 나도 용어란 자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전을 성경적 맥락과 관계없이 그냥 예배당을 지칭하는 특수한 용어로 쓴다면 괜찮다. 다만, 성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으면 "우리의 성전 용어는 성경과 관련 없는 그냥 우리의 용어일 뿐이다.",이걸 분명히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교회에서 성전이라는 용어가 설교에 등장할 때 구약적 의미를 충만히 담은 채 성도들에게 소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소개를 넘어서서 어떠한 행동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예배당은 다윗과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과 같은 것이니까, 열심히 헌금하자." 또 "주님이 성전(구약 제사가 드려지던 헤롯성전)을 사모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건물에 자주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자." 이런 식으로 설교가 이루어진다. 예배당은 정기적인 예배를 위한 곳이니 헌금하자, 혹은 교회 공동체가 모이기를 힘쓰자, 이 정도의 주장이면 충분할텐데, 성전을 끌어들임으로써 모종의 절대성 내지는 성경 이상의 중요성을 부과하게 되는 것이다.

 

A :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예배당을 성전으로 지칭하고 있다. 성도들에게 익숙한 용어를 쓰는 게 옳지 않나?

 

B : 일반적인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 불에 길을 건넌다고해서 빨간불에 길 건너는 게 옳은 것은 아니잖나? 또 복음과 상황 2010년 5월호를 보면 남서울교회, 서울영동교회, 감자탕교회, 높은뜻숭의교회도 성전이라는 말 대신 예배당이라는 말을 사용한단다. 나는 일원동에 있는 남서울은혜교회를 작년에 예배드리러 자주 갔는데 거기는 예배당 건축을 위한 헌금 작정을 독려하면서 플래카드에 그냥 예배당이라고 쓰더라.

 

A :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가?

 

B : 기표와 기의의 결합체인 기호는 자의적인 것이고, 따라서 공동체가 합의한 언어규칙 하에 새로운 용어, 기호를 만드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앞서 말했듯이 예배당을 지칭하는 특수한 용어로 성전을 사용하기로 하면 된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은 자의적 용어를 성경적 용어로 둔갑시키는 일이다.

설교 때 현대의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지칭하는 설교자의 의도가 설령 구약 성전과 현대의 교회건물을 의미상 비슷하다고 여기면서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러한 설교는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음에 분명하다. 성도들의 신앙인식이 왜곡되지 않도록 성전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