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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후 에세이

니체 : <비극의 탄생>이 탄생시킨 아름다움



니체, <비극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미의 세계를 탄생시키다.

 

 

"아폴론적인 것은 비극에서 기만을 통해 음악의 원초적인 디오니소스적 요소와 맞서 승리를 거두었고 연극을 가장 명료화하려는 목적에 음악을 이용했다는 결과가 우리의 분석에서 나왔다면, 물론 거기에 가장 중요한 단서를 붙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곳에서 저 아폴론적 착각은 깨졌고 파괴되었다. 연극은 전체로서 모든 아폴론적 예술효과를 초월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비극의 전체 효과 면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한다.  비극은 아폴론적 예술의 왕국에서는 울려 퍼질 수 없는 음을 내며 끝난다. 이로써 아폴론적 기만은 실제 모습을 드러낸다. 즉 그것은 비극이 지속되는 동안 디오니소스적 효과를 가리는 베일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이 효과는 너무 강력하여 마지막에 가서 아폴론적 연극 자체가 디오니소스의 지혜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하고 자신과 자신의 아폴론적 모습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비극의 탄생,170p)

 

"우리는 이 형상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거의 간파했다고 믿으며 또 그 배후의 근원적 형상을 보기 위하여 그것을 커튼처럼 걷어버리기를 원했다. 아무리 형상이 밝고 명료해도, 그것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형상은 무엇인가를 계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은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상은 자신이 가진 비유적 계시를 통해 베일을 찢어버리고 비밀에 가득 찬 배경을 폭로할 것을 요구하지만, 바로 이러한 투명한 명료성은 다시금 우리의 눈에 마술을 걸어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다."(비극의 탄생, 173p)

 

 


근대철학과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구문명에 화려한 포탄을 쏘아대며 정면 대결을 펼쳤던 니체의 사상은 <비극의 탄생>에서 알 수 있듯이 미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그가 인지한 서구 문명의 위기는 총천연색의 생생한 삶을 불변적 진리와 주체를 정립한다는 미명 하에 미라로 박제하여 철학과 종교의 피라미드에 망자들과 함께 전시한 것으로부터 기인했다. 그리고 그 위기와 타락의 시작에 마신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 있다. 논리적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모조리 비진리의 영역에 몰아 넣은 후 철저히 부정하는 것에서 삶은 힘과 생동을 잃고 이론적 낙천주의는 천천히 염세주의라는 귀결을 향해 걸어간다. 그 비진리의 영역에 유폐된 참된 아름다움, 참된 예술이 청년 니체가 주목한 새로운 가치요 문명과 삶의 부활적 기립을 알린 시대의 여명이었다.

 


니체의 미학은 그리스 비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비극 안에서는 예술의 중요한 두 충동인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온전히 결합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개별자들 간의 경계를 파괴하고 만물이 화해하는 부서짐과 합일의 경험을 통해 강렬한 황홀경을 제공한다. 그 황홀경을 맛보며 개별적 경계가 와해되는 와중에 인간은 자신의 적나라한 실존과 조우한다. 해체적 황홀을 통과하여 만난 근원적 일자는 인간 실존의 필연적인 고통과 모순을, 실존을 향한 억제하기 어려운 탐욕과 의욕, 욕망과 함께 전시해준다.

 

 

 

인간의 실존이란 “생성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몰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생성과 실존 자체를 끝없이 욕망하는 것이기에 “사나운 고통의 가시”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무서운 실존의 진리가 발휘하는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아폴론이 내려온다. 자기망각과 자기파괴의 디오니소스적 상태에 아폴론은 형상을 부여하고 다시금 개체화의 질서를 세운다. 공포스러운 실존을 목도한 후 그것을 아폴론적 조형의 예술과 아름다움으로 치유하고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아폴론적 아름다움은 세계 배후의 끔찍한 실존적 진실을 은폐하는 미적 베일과 착각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비극을 보는 심미적 청중은 이제 이 베일을 찢기 원한다. 베일 뒤에 숨어 있는 근원적 일자의 세계로 다시 안기고픈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비극의 종반에 이르러 최후의 솟구침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로써 청중은 개체들의 세계가 다시 파괴되고 디오니소스적인 합일을 이루는 현장에서 그리스 비극이 안겨주는 미적 쾌감을 얻게 된다. 아폴론이 덧씌운 아름다운 베일과 착각은 깨어지고 비극 안에서 초극된다. 그럼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기껏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보여주는 실존의 고통이 무서워 아폴론적인 것으로 도피해놓고는, 다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쾌감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입되는 니체의 개념이 “유희”이다. 디오니소스가 아폴론의 가면을 하고 개체들의 얼굴과 입을 빌리다가, 종국에 다시 그 개체들을 비극적 운명 속에서 파괴하는, 이러한 개체에 대한 건설과 파괴의 반복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유희라는 것이다. 이 유희로부터 그리스 비극의 클라이맥스가 선사하는 미적 쾌감이 분출한다.

 

 

 

 

결국 합창이라는 음악적 형식과 대사와 서사의 연극적 형식이 결합된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인 지혜 –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은 모두 하나라는 진리 - 를 아폴론적인 꿈과 조형의 가상을 빌어 표현하고 노래했던 고등한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