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추진하는 초중고교 9시 등교 프로젝트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주로 학부모 단체와 보수 교원 단체인 한국교총을 중심으로 저항이 일고 있다. 그 중에서 한국교총의 주장이 흥미롭다. 지난 15일에 낸 보도자료에서 한국교총은 “교육감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상 학교장에 위임된 권한을 행사해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권한남용”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총(이하 교총)이 내세우는 핵심 논거는 ‘학교의 자율성’이다. 예전 사학법 논쟁이 불붙었을 때도 사학과 종교단체가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며 주장했던 것이 바로 ‘학교의 자율성’이었다. 사학법이 통과 되어 사외이사가 들어오면 학교 자율성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초중등 교육계 주류의 기본 입장은, ‘집단의 자유’를 ‘개인의 자유’보다 앞에 놓는다는 것이다. 자율은 좋은 것이다. 다만, 이 자율이 타인의 자율을 침범하지 않을 때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집단의 자율이 증가함으로써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자율이 증가한다면, 이러한 증진은 권장할 만하다. 반면 집단의 자율이 증가함에 따라 개인의 자율이 감소한다면, 이러한 집단 자율은 개인에 대한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 억압일 뿐이다.
교문지도에 걸려 기합받는 한국 학생들.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헌법 정신은 아직 한국에서 요원하다
물론 여기에는 논리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도그마의 차이가 서려있다. 집단의 자율성 때문에 개인의 자율성이 침해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에 가깝다. 반면 개인의 자율성이 희생되더라도 집단의 자율성이 증진되어야 한다는 쪽은 집단을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입장이다. 무엇이 더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그야말로 세계관, 가치관의 영역이다. 그래서 논리적 화해가 불가능한 도그마의 차이라고 한 것이다.
9시 등교 정책을 실시하면 학교의 자율성은 줄어들지만, 그만큼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은 증진된다. 학생들은 이전보다 늦어진 등교시간 덕택에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고, 아니면 예전처럼 학교에 일찍 나와 수험 공부에 매진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학생 개인의 선택폭, 즉 자율성이 높아졌다. 반면 9시 등교 정책을 거부하고 학교가 마음대로 등교시간을 지금처럼 조정한다면, 학교 집단의 자율성은 증가하지만 그만큼 학생 개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늘고 자율성은 줄어든다.
따라서 현재 9시 등교 정책을 거부하는 교총은 전형적인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입장이다. 학교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것은 안되지만, 학생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집단주의 중 무엇이 더 옳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건국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합치하는 입장이 무엇인지는 객관적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을 위해 집단과 국가가 존재한다는 자유주의의 입장을 지지한다. 이것이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는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고로 교육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늘상 들고 나오는 ‘학교의 자율성’은 헌법 정신과 무관한, 反대한민국적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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