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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1년]만약 록펠러가 회심을 했다면?그의 신앙 행위 결단의 중심은 무엇이 될까

 

만약 록펠러가 회심을 했다면? 그의 신앙 행위 결단의 중심은 무엇이 될까?

 

록펠러는 석유 황제였다. 록펠러든 로마의 황제든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은 순수한 의미의 개인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은 구조의 인격적 화신이며 제도의 대갈못이다. 그런 그들이 회심을 하면 당연히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즉 사회구조적 행위가 그 사람 신앙 행위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 행위를 할 때 그의 내면이 동시적으로 바뀐다고 할 수도 있고 또는 믿음과 신앙고백이 초래하는 필수적이고 즉각적인 행위(열매)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분명한 것은 정경유착과 무자비한 학살적 기업인수 등 사악한 기업시스템의 정점에 있던 록펠러의 신앙 역량이 집중되어야 할 곳은 단순한 대면관계에서의 미덕실천이 아니라 제도개혁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십일조를 내고 자선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이 초래한 수많은 중소 기업가의 짓밟힌 삶의 터전을 보상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면 그것만큼 야무진 착각은 없다. 가뭄을 몰고 온 후 펌프 하나 무료로 설치해준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는 게 얼마나 역겨운 위선인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라면 모두 동의할 게다.

 

자신이 영속화시킨 제도를 바꿀 힘이 있는 자들, 그 권력자들의 회심은 필히 제도변혁의 좁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비서에게 친절을 건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재생산하는 제도를 창조적으로 해체한 뒤 재형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본질적이고 확고하며 제1차적인 신앙 행위를 대면적 인간관계에 한정하려는 신학적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익한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신학적 상상력의 궁핍과 신학적 사유의 부박함이 빚어낸 이 독단론. 지겹고 끈질기게 들러붙는 이 묵은 착각과 오류가 교회에서 추방되면 될수록 교회는 진보하게 될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지향하는 성장과 진보의 정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라는 성경의 말씀을 받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