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은 계급적 개념이다. 그러나 다중이라는 계급이 기존 계급과 다른 점은 그것의 포괄적 범위이다. 기존의 맑스주의에서 주장된 투쟁 주체로서의 계급은 노동계급인데, 이것은 배제적이고 좁은 의미의 계급이다. 산업 노동자만을 자본에 대한 대항 주체로서 유의미한 계급으로 상정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다중은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개념이다. 대중은 “프롤레타리아 개념에 그 가장 풍부한 규정, 즉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노동하고 생산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규정”을 부여한다.
여기서 다중이 지닌 두 가지의 역설적 특징이 드러난다. 특이성과 공통성이 그것이다. 산업노동자뿐 아니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빈자 등을 포괄하는 다중이기에 특이성이 드러나며 동시에 자본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억압의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억압의 수동적 상태만이 다중이 지닌 공통성은 아니다. 공통성에는 공통적으로 행동하는 능동성이 있다. 즉 다중은 공통적으로 행동하는 특이성들이다. 다중을 구성하는 개별자들은 무수한 특이성들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특이성들을 사장시키지 않으면서 서로 소통 한다. 특이성들 간에 소통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언어과 같은 최소한의 공통된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이성들간의 소통은 공통된 것에서 기인하는 것인 동시에, 공통된 것을 생산하는 매개가 된다.
이러한 공통된 것의 생산의 대표적인 형태는 비물질 노동이다. 비물질 노동은 지식,정보,소통,관계, 정서적 반응 등의 비물질적 생산물들을 창출하는 노동을 뜻한다. 이 비물질 노동은 질적 측면에서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병존하는 수없이 다양한 노동형태들에 일정한 경향과 방향을 부여하고 규정한다는 면에서 비물질노동은 주된 노동의 형식이 되었다. 19,20세기에는 산업노동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비물질 노동이 산업노동에 비해 다중에게 특별히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산업노동이든 비물질노동이든 그것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면 전세계의 무산계급은 공통된 경향을 가진 것이다. 산업노동과 비물질노동의 차이점은 노동의 생산물이 발생시키는 효과이다. 비물질 노동의 생산물 자체가 공통성을 심화시킨다. 비물질 노동의 생산물은 소통과 지식, 관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생산물들은 산업노동의 생산물들이 배타적으로 점유되고 소비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소비의 과정에서 필히 공통성을 수반하게 된다. 자동차라는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이 공통성을 제고하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빈자와 부자의 구별을 자동차로 표현해줌으로써 공통적인 것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협력과 소통에 기반한 비물질노동은 노동과정뿐 아니라 생산물에 있어서도 사회적 관계의 생산을 통해 공통된 것의 확대 재생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듯 비물질 노동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오늘날의 노동 경향성은 특이성과 공통성을 담지한 다중의 출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왜냐하면 비물질 노동의 과정과 그것의 생산물인 소통, 사회적 관계, 협력은 특이성들이 온존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공통성의 형성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소통, 관계, 협력은 균질화와 평준화라는 특이성 제거의 과정 없이도 공통된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이다. 이것의 좋은 예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이다. 포탈 사이트를 통한 이윤의 창출은 비물질 노동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포탈 사이트 서비스의 생산 과정은 사회적 관계에 기반하며, 그것의 생산물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출해낸다. 다음 아고라의 경우, 다음이 만들어낸 아고라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점증하는 숫자가, 다음이 인터넷 광고 단가를 높게 책정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이윤 창출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네티즌들은 단순히 포탈 사이트의 이윤 획득이라는 노동 과정에 협력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 아고라에 접속하여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토론하며 모종의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인터넷 인프라와 언어라는 공통된 것에 기초해 포탈 사이트에서 소통과 협력의 비물질 노동을 수행한 것은,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관계라는 심화된 공통성의 생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터넷 서비스라는 비물질 노동이 정치적 공통성을 엮어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통성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특이성을 담지하고 있다.
비물질 노동이 생산해낸 지식, 욕망, 경험 등의 공통된 것들은 다중이 지닌 공통의 잉여를 구성한다. 이러한 다중의 공통적 잉여는 다중을 공통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자본의 지배에 대적하여 저항하는 현실적 버팀목이 된다. 공통된 박탈, 억압이 단순히 적대감과 분노만을 낳는다면, 공통된 잉여는 그 억압에 맞서 창조적인 저항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미FTA 반대시위와 자스민 혁명에서 SNS에 기반한 비물질 노동이 수행한 역할이 좋은 예이다. SNS에서 생산된 공통된 욕망과 열망의 축적(잉여의 축적)이 억압에 맞서는 다중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표출된 것이다. 다중들의 공통된 것에 기반한 저항은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간다. 오늘날 자본, 정치 권력의 지배가 전세계적으로 된 것과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다. 다중이 애초에 공통된 것을 생산하는 매개로 활용했던 비물질 노동에서의 소통은 전세계에 각자의 지역적 특이성에 몸담고 있는 다중들을 연결시켜준다. 억압에서 벗어나고 대안적 사회를 열망하는 다중들의 공통된 욕망이 소통을 타고 흐르는 분산된 네트워크의 방식으로 발전하여 전세계적 저항을 기립시킨다. 2003년2월 15일에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 아랍의 민주화 혁명이 들불처럼 북아프리카를 질러갔던 것,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는 반대 시위가 상이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최근 한미FTA 반대 시위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월가 점령 시위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것은 금융자본주의에 의해 농락당하는 시민 각자의 특이성적인 삶을 옹호하고자 하는 다중들의 공통된 열망의 표출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중들의 저항은 그들이 비물질 노동을 통해 생산한 풍부한 부(富),잉여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기에, 단순한 항의를 넘어서는 창조와 희망의 움직임이다.
요컨대 다중의 출현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경제적 헤게모니인 비물질 노동의 특성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자본은 비물질 노동이라는 새로운 자본축적 형식을 통해 다중들을 소비의 주체이자 생산의 주체로 포섭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비물질 노동의 과정과 그것의 생산물을 향유하는 다중들은 공통된 열망과 잉여를 생산함으로써 권력의 전세계적 지배에 맞서는 전세계적 저항과 대안의 잠재력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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