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의 원리로 구성한 자기 조정 시장을 사회조직의 제1원리로 삼는 이데올로기이다. 자유방임과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시장은 자생적으로 발생했으며 그것의 유지와 발전은 자기 조정적이다. 요컨대 시장은 자연적으로 태어나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신념이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칼 폴라니의 비판은 자유 방임과 자기 조정 시장의 개념적 모순과 그것의 역사적 표출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 폴라니는 자기 조정 시장의 형성 및 유지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개념상 자기 모순이라고 일갈한다. 첫째로, 자기조정 시장 형성의 역사적 과정은 비자유주의적이었다. 자유방임적 자기 조정 시장, 곧 자유 시장은 기원에서부터 전혀 자유롭지도, 자연적이지도 않았다. 자기 조정 시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 노동시장, 화폐시장이 모여 거대한 시장 집합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세가지 시장 중 어느 하나라도 가격에 의한 조정과 통제라는 자유주의의 자유방임 원리를 이탈한다면 자기 조정 시장은 성립할 수 없다. 예컨대 금본위제 화폐시장이 형성된 상태에서 노동 시장이 비경쟁적이라고 하자. 공황 시기에 금본위제는 국가 내 통화의 극적인 긴축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화 긴축의 상황은 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초래한다. 이 때 공장주가 악화된 채산성을 만회하는 방편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지 못한다면, 즉 노동시장이 자유롭고 유연하지 못하다면 자기조정 체제는 붕괴한다.
따라서 노동, 화폐, 토지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야만, 즉 그 세가지가 상품이 되어야만 경제적 자유주의에 의해 직조된 시장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 토지, 화폐가 처음부터 상품은 아니었다. 상품이란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화와 서비스이다. 토지는 자연이다. 자연은 판매되기 위해 생산되지 않았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다. 노동력도 판매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귀착되어 있는 수많은 생명 활동 중의 하나이다.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로서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작동 원리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상품 본래의 개념과 모순되는 허구적 언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적 개념이 현실에서는 자신이 거할 육체를 찾았다. 근대의 자기조정 시장은 이 세가지 상품의 발생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본래 상품이 아닌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상품화의 과정은 자연적이지 않았다.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 강제적 과정이었다.
예컨대 영국 헨리 8세 시절의 교회 토지 세속화는 토지를 개인에게 배분하고 유동화시키는 데 국가권력의 역할을 보여준다. 프랑스와 대부분 유럽대륙에서는 나폴레옹 법전이 도입되면서 토지가 매매 가능한 재화가 되었다. 스피넘랜드 법을 철폐하고 수정 구빈법을 제정한 것은 노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쟁적 노동시장의 창출을 위한 국가의 활동이었다. 결국 상품화를 제약하는 기존의 사회,정치,경제적 제약 조건들을 없애는 데 시장 외부의 비경제적 요인, 곧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기 조정 시장의 기원이 비자유주의적임을 폭로한다.
둘째, 자기조정 시장의 유지 및 보존의 역사적 과정도 비자유주의적이다. 자유시장 체제의 발생을 위해 도입되었던 국가의 규제,개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의 제정이 자유시장 존립의 근거였기 때문에, 그 법이 제대로 관철되도록 유지하는 국가의 노력은 일회적이지 않고 항시적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유방임적 자기조정 시장은 예기치 않은 내적 분열의 상황을 맞이한다. 자유방임과 자기조정시장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조화로운 요소로 기능하는 듯 보였지만, 노동조합과 기업 카르텔이라는 현상이 돌출하자 상황은 반전된다. 자유방임의 원리에 충실하다면 기업가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담합하고 판매가격을 올릴 수 있다. 노동자들도 연대하여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모두가 경제활동 주체의 자유로운 행위의 결과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대, 담합은 자기조정시장의 가격 기능을 교란시켜 시장의 위기를 발생시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방임의 원리와 자기조정 시장은 충돌한다. 이러한 충돌은 경제적 자유주의가 가진 내적 논리의 붕괴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자유방임과 자기조정 시장의 충돌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대응은 여전히 비자유주의적이다. 즉 그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방임의 원리를 배척하고 노동조합법이나 반트러스트 입법 조치라는 정부 규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결국 경제적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방임적 자기조정시장은 그것의 형성 시발과 유지 및 발전 모두에서 자기원리를 배반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역사적 육화는 논리적 근거가 아닌 권력적 근거라는 전(前)논리적 형상 위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학적 기능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는 허위의식으로서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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