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씨가 향년 6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즐거운 사라’가 여전히 출판금지 상태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의 죽음이 불러오는 비감은 너무 쓰라리다.
고루한 유교적 멘탈리티로 무장한 한국사회는 마광수가 떠난 이후에도 별 일 없다는듯 무정한 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마광수는 윤동주를 발굴한 문학이론가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던 순수한 시인의 진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가 야한 정신의 기수였던 마광수라는 점이 큰 역설로 다가온다. 하긴, 마광수를 등단시킨 박두진이 독실한 청교도였음을 상기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겠다.
기본적으로 마광수의 예술은 대리배설, 카타르시스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예술이 반드시 관습적으로 아름다운 것, 윤리적인 것, 올바른 것에만 천착할 필요는 없었다. 더러운 것, 야한 것, 비윤리적인 것이 인간 본질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예술 속에서 표현하며 배설하자는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가 말한 성에너지의 승화로서의 예술과 잇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예술론은, 승화라는 하늘을 향한 개념을 배설이라는 땅을 향한 개념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좀 더 육체와 관능에의 적극적인 긍정을 쏟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마광수는 예술을 교훈의 매개로 사용하려던 유사이래의 모든 교훈주의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예술인이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의 율법적, 병리적 집착이 불러일으키는 신경증 속에서 우리는 영화, 그림, 소설,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표현의 본질이 무엇인지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수정헌법 1조에 새겨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유령이 아닌 피와 살을 입은 생활개념으로 빚었던 래리 플린트가, 애통하게도 한국에서는 사학 연금도 끊긴 채 우울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광수에 대한 추모가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종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마광수를 위하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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