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가 앱 론칭 1주년을 맞아 자사의 각종 성과 지표에 대한 인포그래픽을 공개했다. 성과는 눈부셨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각각 만화부문, 도서부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1년 밖에 안된 신생 회사가 NC소프트로부터 50억 투자 유치를 끌어내고 CJ E&M과 전략적 제휴를 맺기까지 했다. 회원수2는 110만명을 넘어섰고, 최고 수익 작가의 연 수익은 2억원을 훌쩍 넘는다.
레진코믹스의 1주년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신생 기업의 빠른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유료 웹툰’ 서비스가 시장에서 반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웹툰하면 으레 포털 사이트에서 보는 무료 웹툰을 떠올리기 쉽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불법 복제가 만연해지고, 돈을 내 사보았던 기존의 종이 카툰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추가적인 상품을 복제하는데 드는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인터넷 경제의 특성이 얕은 저작권 인식과 결합하면서 무분별한 카툰 불법 복제를 양산해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한국 만화 작가들이 나름 진화하며 적응한 모델이 바로 무료 웹툰 서비스이다. 웹툰이라는 핵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조회수와 트래픽을 증가시켜 광고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고안한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시대의 전형적인 ‘3자간 시장’ 수익모델이었다. 상품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주에게는 광고 공간을 유료로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모델은 기존 매스 미디어의 수익 구조를 웹에 적용한 것이다. 언론사가 뉴스 상품을 소비자에게 무료로 혹은 거의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주들이 언론사와 소비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금액을 지불했다. 엄밀히 따지면 소비자는 이러한 ‘3자간 시장’에서 결국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기업의 광고 비용이 상품에 포함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3자간 시장’ 모델은 한국 만화계에 어느정도 숨통을 틔어준 것이 사실이다. 사장되고 침몰하는 유료 종이 카툰 시장에서 자칫 함께 수장될 뻔한 만화 작가들이 대중성과 수익성을 잡는 차세대 모델로서 포털 웹툰은 톡톡히 기능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포탈에 웹툰 연재가 끝나는 동시에 조회수에 따른 원고료가 감소하거나 받지 못하고, 이는 끊임없이 쉬지않고 웹툰을 생산해야 하는 기계적인 작업 환경으로 웹툰 작가들을 몰아넣었다. 다음(DAUM)이 웹툰 연재가 끝나면 유료로 전환하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인 것도 웹툰 작가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였다.
포탈 사이트에 장악된 웹툰 서비스에 벤처 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레진 코믹스’였다. 레진닷컴을 운영했던 파워블로거 한희성씨가 개발자 권정혁씨와 손잡고 만든 레진코믹스는 프리미엄 유료 웹툰을 핵심 가치로 내걸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결과는 앞서 언급했듯이 성공적이다. 어떻게 유료 상품이 무료 상품을 이길 수 있던 것일까?
성공 비결은 유료 서비스만으로 제공할 수 있는 컨텐츠와 품질의 차이에 있다. 음원 시장을 떠올려보자. 미국에는 냅스터라는 P2P 공유 방식의 무료 음원 다운로드 웹 서비스가 있었다. 음원에 대한 대가를 창작자에게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다운로드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많은 저작권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냅스터를 끝장낸 것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론칭한 유료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 ‘아이튠즈’가 냅스터를 멸종시킨 주범이었다. 아이튠즈는 아이팟과 연동돼 음원 다운로드를 제공하고, 음반사에게는 곡당 1달러라는 확실한 수익을 보장했다. 동시에 저작권 관리 기술을 통해 불법복제, 불법유통을 철저히 근절했다.
소비자들은 음원을 다운로드하려 기존 무료 서비스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아이튠즈는 시장의 선택을 받았다. 왜냐하면, 아이튠즈는 냅스터가 제공할 수 없었던 고품질의 음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냅스터에서 다운받은 음원은 무료이긴 했지만 저품질의 음원일 경우가 일쑤였고, 원하는 곡을 찾기 위해 검색에 투자하는 시간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튠즈 음원은 품질이 보증되고 검색에 드는 비용도 매우 적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이 프리미엄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에 지갑을 얼마든지 열었던 것이다.
레진코믹스가 무료 웹툰 시장에 대적해 강력한 대체재로 자리잡아 가는 현실도 아이튠즈의 성공사례와 포개지는 부분이 많다. 기존 무료 웹툰 시장은 조회수와 트래픽에 의존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성과 신속성을 생명으로 했다. 그래서 성인물이나 특정 마니아 층을 겨냥한 컨텐츠는 찾기 어려웠다. 또 매주 또는 격주로 업데이트를 하며 트래픽을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수익구조상, 빠르게 생산될 수 있는 개그물이나 일상카툰이 주를 이루었다. 특별히 저품질의 카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컨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레진코믹스는 단순히 조회수와 트래픽 유발이 아닌, 유료 구매자를 대상으로 카툰을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니악한 성인 타케팅의 컨텐츠를 자유롭게 서비스할 수 있었다. '결혼해도 똑같네'라는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웹툰을 쓴 작가 네온비가 레진코믹스에서는 '나쁜 상사'라는 파격 성인물을 연재할 수 있는 것도 '유료' 플랫폼이었기에 가능했다. ‘유료’서비스가 선사하는 컨텐츠의 다양화와 그로 인한 컨텐츠 품질의 향상은 구매력 있는 성인들로 하여금 웹툰을 위해 기꺼이 사이버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매력적인 컨텐츠는 여전히 유료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또 강화된 저작권 규제와 저작권 관리 기술의 향상 및 예전보다 고양된 대중의 저작권 인식도 레진 코믹스의 유료 웹툰 성공에 일조했다.
아이튠즈의 고품질 유료 음원이 냅스터의 저품질 무료 음원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웹툰 시장이 재편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음원 컨텐츠와 달리 웹툰 컨텐츠는 제공 플랫폼별로 컨텐츠가 중복되지 않고 상이하기 때문이다. 일테면 음원시장의 경우 냅스터에서도 본조비 노래를 다운받을 수 있고, 아이튠즈에서도 본조비 노래를 다운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웹툰은, 네이버에서만 조석 카툰을 볼 수 있고 레진 코믹스에서만 나쁜 상사 카툰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웹툰 시장은 성인부터 미성년자까지를 포괄한 개그물, 일상물 중심의 무료 웹툰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고품질의 다양한 컨텐츠를 내놓는 레진코믹스의 유료 웹툰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크다.
레진코믹스가 웹툰계의 아이튠즈가 되는 것은 분명 만화작가들에게나 독자들에게나 큰 혜택이다. 무료 서비스만이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컨텐츠 사업의 유효한 수익 모델이라는 도그마를 깨뜨린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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