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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남경필, 꼭 사회지도층이라고 했어야 했나

전 지도층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민주 사회에서 지도층은 없으니까요.”

-2005 1 8일 손석희의 <시선집중> -

 


남경필 경기지사의 장남이 군부대에서 폭행과 성추행에 연루된 것이 언론의 보도를 타자, 곧바로 남경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서울시장 후보였던 정몽준의 아들이 세월호 유족들을 미개하다고 지칭한 SNS 글이 일파만파 커지자 곧바로 정후보가 사과를 했던 것처럼, 정치인들의 자녀가 일으키는 스캔들에 대해 요즘은 빠르게 사과하고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대세입니다. 2.0 시대에 온라인 상에서의 여론 형성과 정보 파급력이 종이 신문만 존재하던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겠죠. 또한 사안이 폭행, 비하 발언 등 도덕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명백히 잘못된 사안일 경우, 괜히 일말의 변명을 사족으로 붙였다가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남경필 경기지사의 사과문에서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사과문을 보시죠.

 




여기서 남경필은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단어 자체만 떼어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닐지 모릅니다. 경기도지사로서 경기도의 행정을 책임지고,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불쾌하게 다가옵니다.

 

첫째, 사회지도층이라고 자칭하는 한국 사회 파워 엘리트들의 지난 행적입니다. 그간 누적된 한국 엘리트들의 자화상은, 사회에 헌신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약자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에 가까웠습니다. 그 엘리트가 정치권력에 있든, 사법권력에 있든, 자본권력에 있든, 관료권력에 있든지 간에 말이죠. 물론 자신의 일을 청렴하게 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노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화이트 칼라 부조리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했으면 마피아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가 대한민국에서 힘 좀 있다고 하는 모든 집단에 접미어로 붙어 신생어를 만들어내겠습니까. 관피아, 모피아, 해피아, 법피아, 건피아 등, 앞으로도 마피아와 합성되어 탄생할 사회 신조어들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적극적인 사익을 추구하여 마피아라는 별명이 붙은 엘리트 집단에게 지도받고 싶은 국민이 있을까요? 그들은 지도층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릴 윤리적 자격을 박탈당한지 오래입니다.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들이 맡은 바 임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그들을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르는 데 정서적 불편함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진정한 지도자라고 부르기를 망설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명량>의 이순신에게서 진짜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며 열광하는 천만 관객처럼 말이죠.

 

하지만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집단에 속한 어느 누구에게도 지도층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 싫은 것입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에게 지도받고 있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시민의 지성에 대한 모욕인 것이지요.  

 

둘째, 남경필 경기지사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차관급의 정무직 공무원(political executive)입니다. 먼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도지사는 행정에 관한 많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사결정권, 즉 행정권력은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공적 권력의 기원은 국민이라는 주권재민의 헌법 정신은 어김없이 경기도지사한테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도지사는 그 권력을 준 주체인 국민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서열을 따지자면 남경필 경기지사는 경기도민보다 아래입니다. 다만 경기도민들이 일일이 행정 사무에 참여하기 바쁘니, 잠시 행정 권한을 선거를 통해 남경필 지사한테 맡긴 것입니다. 남경필이 다음 선거에서 경기도민의 신임을 받지 못하면 그 권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 서열이 높은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선출된 권력은 말 위에 탄 국민을 인도하는 마부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마부를 말 주인의 지도자라고 하겠습니까? 말을 탄 사람이 지도자이고, 그 지도자의 역할을 잠시 마부가 나눠가진 것 뿐입니다.



 


또한 경기지사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을 영어로 civil servant라고 합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시민의 종복입니다. 공무원은 본질상 지도층이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종복이요 하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무원, civil servant가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라 일컫는 것은, 기와집의 곳간을 지키는 하인이 갑자기 집주인 행세를 하는 오만함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공무원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싶으면, 사회 지도층이라는 낯뜨거운 말 대신 공공의 종복이라는 뜻의 공복을 쓰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과거 경기도시사였던 김문수가 나 도지산데하는 참극을 일으켰던 원인은 사회 지도층이라는 강한 자의식이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와 결합된 데에 있었습니다. 사회 지도층 말고, 공복이라고 말합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경필 지사는 SNS에 올린 사과문을 수정하여 사회 지도층이라는 단어를 뺐습니다.

 

손석희가 2005년 시선집중에서 했던 말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격언입니다. 사회지도층은 없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윤리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논리적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공무원 직책이 가진 특수성(국민들을 섬기는 종복)과 한국 엘리트들이 일찌감치 상실한 도덕적 권위로 인해, 경기도지사가 자칭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남경필 지사의 사회 지도층발언은 해프닝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요 몇 년 사이 사회 지도층에 대한 엘리트들의 생각과 일반 국민의 생각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덕적 파산 선고를 받은 엘리트들을 더 이상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었습니다. 남경필 지사가 이번 일을 계기로 성숙한 공무원,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