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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진명여고 학생은 명예훼손으로 처벌될까?

진명여고 학생이 학교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학교 건물에 금이 간 것을 찍어 트위터에 올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 지난 5월말 ‘진명여고가 붕괴되고 있어요’라는 글과 건물에 금이 간 사진을 올린 A양을 진명여고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학교 측은 논란이 일자 어떤 학생인지 알 수 없어서 고소를 했다고 변명했다. 누가 이런 글을 올렸는지 알았다면 내부적으로 해결했겠으나, 트위터로 익명 비판글이었기 때문에 경찰력을 빌려야 했다는 것이다. 


진명여고 학생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인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하기 전에, 학교의 태도부터 따져보자. 진명여고 측의 예의 그 황당함은,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기 위해 경찰력을 빌리겠다는 발상에 있다. 조직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구성원을 발본색원하여 처벌하겠다는 권위적인 조직논리가 강력히 발동한 것까지는 그러련히 하겠다. 한국 사회 전반의 병리적 풍토이니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진명여고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자기들 조직력으로는 내부 고발자를 찾아낼 수 없으니, 공권력을 빌리겠다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부당한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겠다는 멘탈의 스케일이 스펙타클하다. 그리고 여기에 조응한 경찰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자, 그럼 진명여고 학생은 명예훼손의 법적 처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번 사안은 명예훼손과 관련이 없다. 공익을 위한 제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내용, 더 나아가 좀 심한 비난 일색의 표현이더라도 게시물에 공익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대 판례가 이를 증거한다.


우선 진명여고 학생에게 학교측이 적용한 명예훼손 조항을 살펴보자.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일명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불린다.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명예훼손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리 해석의 중점은 바로 ‘비방할 목적’이 있었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공익에 부합하는 온라인 게시글은 비방 목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대법원은 온라인 게시글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원고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렵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고, 자연히 명예훼손죄가 아닌 것이 된다. [대법원 2012.11.29. 선고 2012도10392 참조]


 그럼 아래에서 역대 판례들을 살펴보자.





1. 산후조리원 비판 게시글 올린 여성 – 명예훼손 아니다



A씨는 출산 후 이용했던 산후조리원 서비스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자신의 블로그와 주부 회원이 많이 들르는 인터넷 카페에 ‘산후조리원의 막장대응’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자신이 겪은 산후조리원에서의 서비스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해당 산후조리원이 A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 일명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원심에서는 법원이 산후조리원의 손을 들어주며 블로거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최종적 판결을 내렸다. A씨가 작성한 글이 비록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며 겪은 일에 대한 주관적 평가이며 다소 과장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산후조리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타 임산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의견이라며 공익에 부합하는 게시물로 판단하여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도10392, 판결 참조]



덧붙여 대법원은 부분적으로는 허위 사실이 가미되어 있더라도, 글의 전체적인 취지를 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에 합치하는 경우에도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판단한다.



2. 인터넷 지식검색 질문 게시판에 성형외과 비판 댓글을 단 경우 – 명예훼손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게시판에서 성형외과 관련 글에 비판적 댓글을 단 경우이다. 성형시술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해당 성형외과는 이 댓글을 단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해당 표현물은 전체적으로 보아 성형시술을 받을 것으로 고려하고 있는 다수의 인터넷사용자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및 의견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도8812 판결].



3. 동물병원 피해자가 여러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오진을 주장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경우 – 명예훼손 아니다.



동물병원에 애완동물 치료를 맡겼다가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여러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며 온라인에 이 동물병원이 오진을 했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해당 동물병원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전체적 내용이 동물병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 제공 등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피고에게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0도8143판결].



4. 온라인 유명 강사의 허위학력 논란에 대한 자극적 비판 – 명예훼손 아니다.


한 때 허위학력이 전국을 강타한 때가 있었다. 그 즈음에 한 온라인 학원의 유명 강사도 허위학력 논란에 휘말렸는데, 여기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해명도 없이 강의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발단이 되었다. 한 소비자가 이러한 강사의 태도를 문제삼으며, 실명 및 사진을 게시하고 2회에 걸쳐 인터넷 블로그에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취지의 비난글을 올렸다. 그 강사는 이 블로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며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피고인이 위 글을 게시하게 된 동기, 경위, 배경, 위 글의 전체적인 구성, 글 표현의 정도와 수법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이 위 글을 게시한 것은 그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비록 위 글에 일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며 드러낸 내용으로 침해된 피해자의 법익이 가볍지 않고, 피고인이 블로거로서 온라인상에서 인기와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동기가 일부 있었더라도 그것은 부수적인 목적, 동기에 그친다고 보여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글의 전체적인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하여 이를 거짓의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없다." [인천지방법원 2010. 12. 24. 선고 2010노3208 판결].


이렇듯 지금까지 나온 판례들에서는 공익에 부합하는 온라인 게시글에는 명예훼손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익에 부합한다면 ‘비방의 목적’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진명여고 학생의 게시글도 같은 맥락이다. 건물에 금이 가 있는 사안을 카메라에 찍어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해 ‘학교가 무너질 수도 있다’라는 공적 주장을 한 것으로, 진명여고에 대한 공공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게시글이었고, 따라서 공익에 부합하는 게시글이다. 비방의 목적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이 성립할 여지가 없다.


수많은 판례가 증거하고 있음에도 경찰은 진명여고의 고소를 냉큼 받아 트위터의 원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고 있다. 트위터가 해외서버라 게시글의 신분이 밝혀지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엄연히 판례로 나와 있는 사안에까지 경찰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아래에는 진명여고 학생이 온라인에 게시한 사진들이다. 여러분이 판단해보길 바란다. 이러한 근거로 학교 붕괴 우려를 주장하는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말이다.


↑진명여고 학생이 올린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