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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0년]신자유주의의 기원 - 정치적 자유주의와의 대조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의 어휘적 구성은‘자유주의’에‘신’이 붙어있는 형태이다. 새로운 자유주의라는 뜻일진대 그렇다면 자유주의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자유주의의 시작은 경제적 개념이 아닌 정치적 개념이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로크는 자연법 사상에 근거하여 자연권과, 자연권에 관계된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였다.[1] 인간의 자연권에는 신체의 자유, 종교적 신조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있다.[2] 국가는 이러한 자연권을 존중해야 하며 따라서 국가는 법에 의해 제한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명제 위에서 “자유주의는 아주 단순하게 합헌주의적 국가를 통한 개인의 정치적 자유 및 개인적 자유의 사법적 보호의 이론과 실천”[3]이다. 따라서 비록 자유주의가 국가 권력과 기능을 제한하며 정부로<부터의> 자유(소극적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국가의 크기가 자유주의적 국가의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권의 존중이라는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수단으로 최소국가를 제창한다. 결국 자유주의 국가는 권리존중주의 국가(rights-based state)를 지향하면서 상황적 특수성에 따라 최소국가(minimal state)를 옹호할 수도, 배척할 수도 있는 것이다.[4]

적어도 초기 자유주의의 문맥에서 아담 스미스를 필두로 시작되는 자유방임적 야경국가에 대한 열렬한 옹호를 읽어낼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가 선한 정부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작은 정부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로크는 시민 정부의 목적으로 공공선의 보장을 이야기했다. 로크에게 공공선의 보장은 재산의 증식인데 재산(property)은 좁은 의미의 자산이 아니라 생명(life), 자유(liberty), 자산(estate)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5] 밀에게 있어서 좋은 정부의 조건도 정부의 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정부는 자기 발전(self-development)을 잘 촉진시키는 정부이다.[6]

또한 자유주의는 재산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7]을 주창하지도 않았다. 로마시대부터 18세기까지 소유는 분리될 수 없는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을 의미했지 그것이“자본의 축적”은 고사하고 그 자체를 위한 소유, 혹은 무제한적 축적을 위한 소유를 의미하지는 않았다.[8] 따라서 로크의 시대에“소유한다”는 것은 매우 단순히 삶의 기회를 향상시킴을 의미했다. 소유권의 보장이라는 자유주의의 명제는 끝 없는 자본축적을 승인하는 것이 아닌, <보호>와 <안전>으로서의 재산을 지켜줌으로써 실존적 불안을 제거해주려는 시도였다.[9] 로크, 몽테스키외, 매디슨은 자유방임적 경제의 이론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와 합헌적 국가를 의미했고,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의미했지 자유교환의 경제적 원칙, 더욱이 적자 생존의 법칙을 의미하지는 않았다.”[10] 로버트 노직이 로크의 자연권 개념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던 이유도 로크의 자연권이 적극적 자유를 요청할 수 있는 인류 전체의 보존이라는 관념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이다.[11]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왜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자유주의가 역사의 이중적 계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시민혁명으로서 우리가 지금껏 살펴봤던 자유주의를 정치 영역에서 제도화했다.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으로서 시장의 자율적 조정능력을 신뢰하는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현실 경제에서 구체화하였다.[12]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는 개념의 분열을 요청한다. 절대왕정의 폭압을 견뎌낼 이데올로기적 원동력을 제공했던 자유주의에는‘정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정치적 자유주의가 된다. 이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개념에 선행했다.[13]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동일시 될 수 없는 별개의 개념인 것이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줄기차게 제시된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 및 소유권에 대한 깊은 관심도“시장의 자유”를 강력히 천명한다는 측면에서“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경제적 자유주의”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흔히“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가리키며, 특별히 부의 재분배와 경제적 기회 및 조건의 평등화를 모색하는 민주주의를 말할 때는“경제적 민주주의”라고 따로 지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적자가 신자유주의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초기 형태인 구자유주의와 최근 형태인 신자유주의 사이의 사상적 차이점을 선명하게 논하기는 어렵다.[14] 시기적으로 따지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구자유주의가 산업혁명부터 경제 대공황까지 사상적 수명을 유지했다면, 신자유주의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노직 등의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에 기반하여 오일 쇼크 이후 세계 경제 전면에 대두되었다.



[1]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의 경우 자유주의의 근거를 자연법이 아닌 공리주의에 두었다. 그 역시도 국가의 한계와 국가가 존중해야 할 정치적 자유의 내용에서는 로크와 대동소이 했지만, 사상적 기반이 다르며 자유를 효용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자유 그 자체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효용의 원리에 자유의 원리가 뒤로 밀릴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2] 노르베르토 보비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문학과 지성사,1992)P. 57.

[3] G. 사르토리, 민주주의이론의 재조명2(인간사랑,1999) P.521.

[4]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권리존중주의 국가와 최소 국가 중 하나의 개념만 내포하면 자유주의 국가라고 보았지만(자유주의와 민주주의, 21p) G.사르토리는 전자를 자유주의 국가의 본질로, 후자를 상황적 특징으로 간주했다.(민주주의 이론의 재조명2, 521p) 필자는 사르토리의 입장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자유주의 사상의 태동이 권력 자체에 대한 반대에 있었다기보다, 그 권력이 폭압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를 필요악으로 보는 자유주의의 관점도 결국 그 정부가 산출해 낼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5] 김한원,정진영 엮음, 자유주의:시장과 정치(부키, 2006)P. 65.

[6] Ibid, P. 86.

[7] 로버트 노직은 사유재산권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국가는 어떠한 경우라도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강하게 피력한다.(자유주의:시장과 정치, 167p)

[8] G. 사르토리, 민주주의이론의 재조명2(인간사랑,1999) P.516.

[9] Ibid, P. 516-517.

[10] Ibid, P.510.

[11] 정진영 엮음, 자유주의:시장과 정치(부키, 2006)P.170.

[12] 물론 산업혁명 시기인 18,19세기에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자유 시장 및 자유 무역이 전적으로 정책화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논의가 현실 경제 영역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 산업혁명 시기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실제 영국이 실질적 자유 무역으로 전환한 것은 세계시장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공고화한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이다. 유럽의 각 나라가 산업혁명 초기부터 자유 방임적 경제 정책을 펼쳐나감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es)의 주장에 대한 반박은 장하준의 저서“사다리 걷어차기”를 참고하라.

[13] G. 사르토리, 민주주의이론의 재조명2(인간사랑,1999) P.518.

[14] 구자유주의와 다르게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둘을 구분하기도 한다.(페터 울리히, 신자유주의 시대 경제 윤리(바이북스,2010) P.190.참조)그러나 하이에크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학파가 정치에 지나칠 정도로 회의적이라는 면에서 이 둘을 정치에 대한 강조점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