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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0년]교회 내 민주주의와 성경원리가 양립 불가?

유비되는 사례를 제시하는 정도에서 민주주의와 성경이 양립 불가하다는 궤변을 민망하게 해주겠다. 더 심도있는 철학적, 신학적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교회의 행정적 결정을 민주적으로 하자는 원리를 교회 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표명하는 순간 구약의 여러 본문을 끌어들여

이것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고안된 이스라엘 공동체.

그리고 사울 이후 남유다 멸망 때까지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왕정시대.

이러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고대 이스라엘의 조직 활동 방식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 조직이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경적 공동체 운영 원리는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교회나 교회 밖이나 비슷한 논리를 차용한다.

19세기는 참정권 확대를 통한 민주주의 팽창의 시기였다.

당시 부르주아 세력은 민주주의를 반대했다.

그리고 그 근거 중 하나로 지금 교회 수구 세력들이 차용하는 역사적 근거와 비슷한 맥락의 사례들을 끌어들였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와 상관이 없는 억압적 정치 체제였다.

노예가 존재하던 사회에 무슨 근대의 자연권적인 재산,생명,자유의 보장이 있었겠느냔 말이다.

다시말해 고대의 자유란 정치에 참여할 의무를 말했던 것이지,

근대 시민 혁명을 통해 시발된 자연권적 자유, 소극적 자유, 간섭받지 않을 자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근대적 자유와 공존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자유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런 논리로 부르주아들은 참정권이 중산층 이하의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물론 여러 반대 논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떤가. 교회 내 민주주의 원리 확대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논리적 근친성을 발견할 수 있잖은가?

부르주아들이 고대 국가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근대적 자유와 양립한 적이 없었음을 근거로, 현재에 만약 민주주의가 팽창한다면 자연권적

자유는 질식될 것이란 논증을 전개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내 수구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빠져있음을 지적하면서,

교회 내에 민주주의가 적용 또는 확대된다면 성경적 원리는 파괴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들 주장의 오류는 금세 보인다.

부르주아들의 주장, 즉 고대 민주주의 특성 중 하나가 자유의 결여였던 만큼 민주주의는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거짓임이 증명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상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민주주의냐에 따라 상충하기도하고 상호 상승 작용을 일이키기도 한다.

노예,여자,이방인에 대한 압제가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정착된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인권으로서의 기본적 자유, 이를테면 종교,양심,사상,언론,표현,신체의 자유를 인정하고 증진시키기를 마다하지 않는 정치적 자유주의와의 결연으로 탄생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자유주의적 자유와 모순적이고 긴장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조화와 상호부조적,상호소통적

회로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교회와 민주주의의 관계도 위와 대동소이하다. 고대 이스라엘이 교회의 예표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교회 내 민주주의를 배척할 근거를 가질 수는 없다.

고대 이스라엘이 민주주의적 정치체 및 종교체가 아니었더라도 그 사실이 곧바로 교회와 민주주의의 필연적 긴장 관계를 합리화 하지는 않는다.

사도행전에는 일곱 집사를 투표로 선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들이 기도해서 일곱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신학적 사건이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신약에서 성도들의 신분은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으로 동일하다. 이러한 만인 제사장론에 의거해 칼빈은 장로정치를 교회에 도입하고

행정 및 치리에 있어서 평신도와 목회자의 동등한 파트너쉽을 정착시켰다. 교회 민주주의의 물고는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본질적 측면을 고려한 종교개혁가에 의해 터진 것이다.

이렇듯 새언약의 시대에, 성경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민주주의 원리가 교회에 도입되었다.

그럼 구약 시대에 민주주의가 없었던 이유는(민주적 요소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가 성경적 원리와 필히 충돌하는 모순적 관계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잠정적으로 유보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의 성품 및 뜻과, 교회 내 민주주의의 원리가 필연적으로 상충한다면 신약 시대에서 투표라는 민주적 원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7집사를 세우기로 작정하셨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보다 진보되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주체적 역할을 존중하는 순도높은 성경적 의사결정 구도이다. 다만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구약 시대에 잠시간 보류되었고, 새언약의 시대에 경륜의 전환으로 민주주의는 교회와 사회의 정치원리로 점점 팽창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신학적 의의를 면밀히 고찰해볼 때, 민주주의가 공동체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리는데 매우 적합하며 진보된 형태의 의사결정 구도임을 통찰하기는 어렵지 않다.

따라서 껍데기만 남은 장로교회의 장로정치를 부수고 진정한 성도 주권의 교회 행정 및 장로정치가 탄생하기를 고대하며 노력하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인간다움의 중요한 요소인 이성을 성실히 사용하는 인간 존재의 과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