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는 기계 몸을 가질 것이냐, 생물학적 몸을 유지할 것이냐의 햄릿적 고민을 극의 종반까지 끌고 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몸에 관한 사유라는 측면에서, 니체의 몸철학을 빼닮은 면이 있다.
근대 철학이 이성적 특성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던 것은 인간을 인식론적 존재로서만 왜소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여기에 저항하는 니체의 철학은 내부의 수많은 힘들이 부딪치고 각축하며 창조하는 "몸"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몸이 지닌 힘들을 통해 주어진 운명과 구조를 받아들이면서도 끝없이 분투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니체가 주장한 위버멘쉬, 넘어가는 자, 초인으로서의 삶이다.
이러한 위버멘쉬의 사상은 111화에 나온 메텔의 다음 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기계 몸을 포기한 사람)는 한계가 있는 삶을 고른 거야.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려 해."
은하철도 999는 여러모로 풀어볼 얘기가 많은 만화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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