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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후 에세이

도서리뷰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라인홀드 니버> 


‘라인홀드 니버 :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로, 미국의 변증법 신학의 대표자.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디트로이트에서 13년간 목사로 활동했다. 그 후 1928년 유니온신학교의 교수로 초빙된 그는 기독교 윤리학과 실천신학 강의로 명성을 얻었다.’ 


니버는 이 저서에서 개인과 사회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 윤리적 접근을 비판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가 개인과 구별되게 지닌 특유의 속성을 간파하고 그에 적합한 사회적 접근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이다. 


1. 개인과 사회, 어떻게 다른가?


니버의 관점에서 인간은 이타심과 이기심을 동시에 지닌 이성적 존재이다. 특히 인간의 이성은 원래대로 기능한다면 이타심을 확장시키며 사회 정의에 기여한다. 이타심과 이성이 한 묶음으로 선한 기능을 하고, 그 반대편에 이기적 충동이 자리한다. 그런데 이기적 충동은 개인 내면에서 이타심과 이성적 사고를 종종 압도하곤 한다. 인간이 가진 이타심과 이성은 이기심을 억제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도덕적, 이성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적,이성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사회를 조직하고 구성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기심이 이타심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에서 그친 개인적 한계가 사회에 누적되면서 “모든 인간의 집단은 개인과 비교할 때 충동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때에 따라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자기 극복 능력, 그리고 타인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개인적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훨씬 심한 이기주의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다.” 


또한 각 사회의 집단적 이기심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에게는 이타성으로 위장해 수용되기 때문에 사회 내부 성원의 비판적 문제제기로부터 면책 특권을 가진다. 다시말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충성심과 이타심이 집단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내 가족(혹은 국가)을 위해 다른 가족(혹은 국가)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리하여 개인의 비이기성은 국가(또는 집단)의 이기성으로 전환된다.” 또 “한 인간이 자신의 공동체에 바치는 헌신성은 이타주의의 표현임과 동시에 변형된 이기주의의 표현이 된다.”


결국 니버가 보기에 사회 집단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누적된 이기심으로 인해 이기적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에 비해 크게 떨어지며, 설령 개인의 이타심이 발휘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손쉽게 사회 집단의 이기주의에 포획되어 변질된다는 측면에서 개인보다 훨씬 짙은 농도의 부도덕성을 띤다. 


2. 그래서 니버의 해답은? 


니버는 사회집단이 지닌 이같은 강력한 이기적 속성으로 인해, 개인을 교화시키는 도덕적, 이성적 설복과 설득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집단의 파괴적인 이기심을 꺾으려면 따라서 불가피하게 강제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강제력이라는 것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압력, 민주적 선거에 의해 수행되는 제도 변혁(다수파의 의지가 소수파의 의지에 반하여 제도적으로 관철된다는 측면에서 강제적이다), 집단 간의 투쟁 등을 일컫는다. 물론 니버는 사회 모순이 극에 달한 곳에서는 유혈 혁명도 이러한 강제력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강제성은 불가피하게 폭력성을 내포한다. 폭력이란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버는 폭력 자체를 비도덕적으로 바라보는 도덕적 이상주의나 톨스토이류의 평화주의에 반대한다. 폭력은 그 자체로 도덕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 복무하는 목적에 비추어 정당성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경찰력과 군사력도 집단적 폭력이 합리화된 형태이다. 다만 그 폭력을 어떤 목적으로 쓰냐에 따라서 도덕적 지지를 받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을 잡으려 경찰이  범죄자와 격투를 벌인 끝에 제압하고 구속시키는 것은, 범죄자의 의지에 반한다는 측면에서 엄밀히 따지면 폭력이다. 그러나 이 폭력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킨다는 정당한 목적에 의해 전적으로 윤리적인 폭력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버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강제적 수단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강제력 동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폭력적 속성을 띤 사회적 강제력은 기존의 “불의를 제거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불의를 저지르는 데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사회라면 강제력과 갈등의 제거보다는 강제력이 사용되는 목적의 정당성 여부에 더 큰 강조점을 둘 것이다. 강제력의 사용이 누가 보아도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목적에 기여한다면, 그 사회는 강제력을 정당화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고 일시적인 열정에만 기여한다면, 폭력의 사용은 지탄받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강제력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니버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도덕적 훈련을 경시하지는 않는다. 니버는 책의 마지막 챕터인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갈등>에서 이렇게 말하며 마무리 짓는다. “이런 훈련(개인적 도덕 훈련)을 통해 선의지의 감정과 상호 이해의 태도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동체도 통일과 조화를 달성할 수 없다. 사회적 투쟁의 불가피성과 필연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현실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개인의 맹목적인 이기주의를 견제하고 서로 간의 이해와 협력을 넓혀야 하는 의무가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