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요단강이 마르는 역사.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전에 넘어야 했던 강이 요단강이다.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요단강 또한 여리고성 같은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요단강이 놓여져있다. 여리고성보다는 약한 시련, 약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힘든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내 앞에 놓여져 있는 요단강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첨벙거리며, 옷 다 젖어가며 겨우겨우 이 시련의 강을 건널 것인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예를 들면 세상의 값싼 위로, 위안 이러한 것들로 간신히 요단강을 넘어가는 인생이어야겠는가? 아니다. 요단강가에 언약궤를 세우자. 비록 우리 인생의 작은 시련일지라도 그곳에 말씀의 원리를 세워야 한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여호수아3:13’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들은 맨 몸으로 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언약궤를 메고서 강가에 발을 넣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의 물가에 갈 때에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순종의 발걸음을 옮겨 내 인생 문제 한복판에 그 말씀을 꽂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발목이 물가에 잠겨야 하듯이 말씀이 우리 삶의 문제에 접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과 우리 인생의 고난이 만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명심하라. 내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역사는 없다.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자는 더 큰 영광 보기를 소원한다. 내 인생의 요단강을 주님의 능력으로 말려버리며 건넌 사람에게는 여리고성도 두렵지 않다. 요단강에서 드러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여리고성에서도 나타날 것을 믿으며 더 큰 시련도 넉넉하게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다. 새문안 대학부원 모두가 말씀 의지하여 승리하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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