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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1년]니체-전통적 주체의 해체 및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전복-

니체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역동하는 힘의 역학관계로 보았다. 사유와 의식의 지평 이전에 존재하는 힘들의 관계에 의해 인간과 세계가 규정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생각을 인간에 적용해보면, 기존 서구철학이 견지해온 고정적, 불변적 실체로서의 인간 주체가 해체된다. 끊임없는 생성작용으로서의 미분화된 힘들이 다수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인간 주체는 역시나 끊임없이 생성하며 변화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인간 행위와 현상 배후에서 그것을 떠받치는 불변적,동일적 실체는 없다.

 

그러나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현상 배후의 본질적 실체, 고정적 기체를 상정해왔다. 이러한 서양 철학의 오류가 니체는 문법적 환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주어와 술어(동사)로 이루어진 문법 구조는 동작하고 행위하는 것의 배후에 주어가 있다는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한다. 단지 행위만이 있을 뿐인데, 행위자를 지칭하는 주어가 문법의 요소에 들어있음으로 인해 행위 이전에 존재하는 불변적 주체를 상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법적 환상을 실재라고 착각한 서구철학은 변하지 않는 동일자, 고정적 중심으로서의 주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 니체의 입장에서 그것은 허구를 창안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행위자는 없다. 수많은 행위들만이 있을 뿐이다. 시시각각 다른 행위에 의해 끝없이 생성되는 주체는 이제 전통적인 불변적 동일자가 아니다. 비동일자로서 이동하고 변화하는 미분된 힘들의 역동적 총체로서의 주체, 곧 다수의 주체가 니체가 해체하고 새로이 만들어낸 주체의 개념이다. 다수의 주체란 인간 안에 하나의 주체가 조화롭고 통일적으로 서있지 않음을 뜻한다.

 

데카르트의 주체, 곧 생각하는 정신적 주체가 아니라, 전(前)사유적 존재인 힘들의 복잡한 얽혀있음이 니체의 주체이다. 즉 니체의 주체는 힘이 담겨 있는 몸이다. 상호 힘들간의 충돌과 길항작용으로 구성된 끝없는 생성의 장이 몸이다. 다시말해 “몸은 화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정치적 힘들의 총합 관계”이다.

 

이러한 니체의 주체개념은 전통적 주체와 대립되는 새로운 인간상, 곧 초인을 도출해낸다. 초인은 스스로 창조하는 자이다. 자율적 주체로서의 초인은 인간의 몸이 담지한 미분된 힘들을 분출하며 생성의 주인이 되는 주체이다. 힘의 쏟아냄은 변화와 생성의 창조로 나아가게 하며 이러한 무한한 변화로서의 초인은 외적, 내적 동일자로부터 탈주한다. 동일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 그것이 초인인 것이다. 이 초인은 차이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면서 동시에 신체로서의 주체를 유지한다. 변화하지만 동시에 신체를 유지하는 초인은 생성하는 동일자로서 영원회귀를 실행한다. 즉 영원회귀란 차이의 반복, 새로움의 반복을 뜻한다.

 

세계가 이렇듯 끊임없이 생성하는 힘들의 충돌과 갈등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면, 따라서 고정적인 것이 없다면, 첫째, 기존 플라톤주의가 주장해온 이원론적 세계관은 전복된다. 플라톤주의는 고정적,불변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참된 실재의 세계이며, 변화하고 생성하는 현상의 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으로서 실재의 정도가 낮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높은 실재를 함유하는 이데아를 바라보며 경험의 현상세계에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플라톤주의, 그리고 여기에 기반한 서구의 형이상학은 생성, 감각, 역사, 신체를 부인한다. 생생한 현실을 고정적 주체, 불변적 이데아라는 형이상학적 허구 속에서 미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변적 주체와 실체의 없음은 실체와 현상 간의 구별을 무화시키고 생성만이 유일한 원리인 하나의 세계를 창출한다.

 

둘째, 이원론적 세계관의 전복은 곧바로 무목적적인 운동 및 생성의 개념으로 귀결된다. 이원론이 상정한 행위와 현상 이면의 고정적 실체, 불변적 주체의 해체는, 그 실체가 현상의 원인이 됨으로써 현상과 운동에 목적을 부여하는 목적론적 사고를 분쇄한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과 니체의 운동, 생성을 가르는 지점은 운동에 내재한 목적의 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