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4년 이전 에세이

[2012년]균형, 구도(求道), 그리고 사회 참여

우리는 균형있게 사유하고 행동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그런데 균형이 삶과 사유의 궁극적 준거나 지향점이 될 수 있을까균형을 강조하는 성구를 보자.

 

[ 4: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곧 균형을 가지란 소리다그런데 이 치우치지 않음이 복무하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로 표현된 진리의 길을 걷는 것그것이 균형이 종사해야 할 상위의 가치라는 것이다신명기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 28: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균형이 필요한 이유를 신명기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그렇다면 성경의 맥락에서 균형의 가치는 신적 경륜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유효성을 인정받는다어느 한 편을 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악을 떠나고 진리의 길을 추구하는 가운데 조우하게 되는 것이 균형이라는 말이다따라서 균형을 목적적 가치라기 보다는 수단적 가치로 바라보는 게 더 적절하다. 그것은 진리와 옳음에 접근할 때 필요한 여러 도구 중의 하나이다.

 

치우치지 않음균등함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균형을 최종적 가치로 승인하고 좇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종교를 살펴보자균형에 대한 종교적 표현이 무엇인가구원적 진리의 길이 다수라는 종교 다원주의이다우리가 구원에 있어서 균형을 따른다면예수만이 진리의 유일한 통로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그것은 치우치지 않음과는 거리가 먼 분명한 편향이다여기서의 균형은 부처도알라도예수도 구도의 바른 길이라고 간주하는 관점이다따라서 반드시 기독교가 선교를 해야 할 당위도 사라지게 된다. 교회도 나가고 절도 나가고 이슬람 사원도 가는 것이야말로 균형잡힌 종교적 행동일 게다. 

 

허나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없다균형의 귀결이 진리적 궤도로부터의 심각한 이탈이라면 그것을 거부하는 경로를 택하는 게 기독교인의 일반적 패턴이다성경적 균형이란진리의 도정에서만 인준되는 2차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술한 신명기 말씀에서도 ‘치우치지 않음을 다른 신을 섬기지 않음과 연결시키고 있다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 간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신명기 내에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사회문화와 정치에 관한 사유도 비슷하다선악의 복잡다난 한 혼재 속에서 섣불리 편을 가르는 것은 마니교적 이원론에 빠지는 첩경이다선악을 날카롭게 구획하는 정밀한 논리적,과학적 경계선을 찾기 어려운 영역도 존재한다그럼 그러한 곳에서는 당당히 관용과 균형의 상대적 관점을 취하면 된다하지만 논쟁이 되는 사안이 옳고 그름의 분명한 입장을 세워야 하는 성격의 것인지애매함과 관용의 영역으로서 중립적 균형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신실한 지적 노력이 선행 되어야 한다그러나 어떤 이들은 종종 그러한 성실한 과정도 없이 모종의 초사회적이고 초월적 위치라는 허구적 토대 위에 힘겹게 올라선다그리고는 난 균형 잡혔네하는 도덕적 우월감과 냉소를 머금은 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집단적 논쟁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신선 같은 태도를 견지한다한마디로 진리와 관련 없는 일에 무익한 힘을 쏟고 있는듯 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그들 나름의 일갈을 던지는 것이다하지만 어떤 이슈와 논쟁 사안이 진리와 진실의 영역인지비본질과 관용의 영역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고 자동반사적으로 균형과 중립을 선언하는 자세는 지적으로 부박하고 불성실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일종의 골 빈 신선인 셈이다.

 

요컨대 우리는 균형에의 헌신 이전에 진리에의 헌신이 필요하다따라서 누군가의 주장을 산술평균적인 균형의 눈금에 대어보려는 강박보다는주장의 근거를 가치와 진리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이렇듯 진리와 진실의 길을 더듬어 가는 와중에, 반갑게 마주칠 수 있는 게 균형이다그러나 주장하는 자나 그 주장을 비판하는 자나편향이라는 수식어를 달면서까지 외로이 구도와 사회 참여의 길을 걸어야 할 순간도 온다그 때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한 학자의 이 말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얻고자 한다.

 

당신은 너무 정치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즉 당신은 논쟁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당신은 보스나 권위있는 인물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당신은 균형잡히고객관적이고온건하다는 평판을 얻기를 바란다당신의 희망은 주류 대열 안에 남는 것이다.”

 

에드워드 W. 사이드(권력과 지성인 ) -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