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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2년]이 시대의 젊은 아폴론들

그리스 신화에서 니체는 아폴론과 디오뉘소스를 대립시켰다. 아폴론이 정제되고 지적이며 이성적인 근대성의 화신이라면, 디오뉘소스는 정제되지 않고 정념적이며 무정형의 에너지를 머금은 원시적 생명력의 집약체이다. 반면에 나는 아폴론을 프로메테우스와 대립시키려 한다. 아폴론과 프로메테우스를 가르는 기점은 기존의 권위적인 권력집단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우선 아폴론이 속한 올림포스 12신 체제를 설명해야겠다. 올림포스12신 체제는 티탄과 기간테스,그리고 튀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공고화되었다. 티탄은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족속이다. 그들 중 어머니 가이아의 사주를 받은 티탄의 막내형제 크로노스가 어머니와 자식들을 억압하는 우라노스의 성기를 거세하였다. 그런데 티탄족이 권력을 잡은 후의 행태도 아버지 우라노스와 비슷했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삼켜버렸다. 막내인 제우스만 겨우 피해 후일을 도모한다. 어른이 된 제우스는 지혜의 여신 메티스로부터 약을 얻어 아버지에게 먹인 후 자신의 형제, 자매를 다 토해내게 한다. 자기 편을 얻은 제우스가 아버지 세대인 티탄족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티탄과의 전쟁, 즉 티타노마키아가 시작된 것이다. 티타노마키아에 프로메테우스도 참전하는데, 그는 티탄 이아페토스의 아들로 티탄족과 가깝다. 자기 종족을 버리고 제우스 편을 든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반골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티타노마키아에서 승리한 제우스에게 두번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자식들인 티탄들을 타르타로스에 가둔 제우스에게 섭섭했던 가이아가 기간테스들을 준동시켜 일으킨 전쟁으로, 기간토마키아라고 부른다. 기간테스의 도전도 물리치자 가이아는 더 무서운 괴물들로 하여금 올림포스를 공격하게 한다. 별에 닿는 머리, 등에 달린 날개와 눈에서 뿜는 불꽃,그리고  허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독사로 휘감겨 있는 괴물, 튀폰이다. 만만치 않았던 튀폰의 공세도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제우스는 지배구도를 튼튼히 한다. 이제 더 이상 올림포스를 치고 들어올 위협적인 권력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헌데 패족 티탄족의 후손인 프로메테우스가 거슬리는 행동을 일삼았다.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역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준 일이다. 그는 회향나무 가지에 제우스의 불을 담아 인간 세상에 전해주었다. 신과 인간 간의 엄격한 구분에 근거한 가부장적인 올림포스 체제의 명확한 차별성을 무화시키고 흐려버리는 것이 불의 분배인 것이다. 여기에 격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세계의 동쪽 끝 코카서스 산맥의 높은 곳에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쐐기와 쇠사슬로 묶어놓고, 거대한 독사 에키드나에서 태어난 독수리가 간을 파먹게 하였다. 12신의 권위적 지배구도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그 이의제기를 실천에 옮긴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에 묶여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반면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은 올림포스 12신 체제의 충실한 수호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제우스를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적 지배구도에서 차기 실력자이자 권력체제의 육화체로서, 체제에의 도전과 공격을 곧 자신에의 공격으로, 또는 자신에의 공격을 곧 체제에의 공격으로 동기화시킬 줄 아는 자가 아폴론이었다. 일례로 마르쉬아스와 니오베에 관한 일화가 있다. 마르쉬아스라는 시냇물의 신이 아테나가 버린 쌍피리로 아름다운 연주를 했다. 마르쉬아스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칭찬하는 것에 우쭐하여 아폴론에게 피리 연주를 도전하였다. 물론 아폴론의 승리였다. 아폴론은 오만한(?) 마르쉬아스를 나무에 묶어 산 채로 살가죽을 벗겨 죽였다. 또 다른 징벌은 니오베에 관한 것이다.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가 아들딸을 7씩 둔 것을 자랑하면서 아폴론의 어머니(자녀가 둘 뿐)인 레토를 깎아내렸는데, 여기에 분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화살로 니오베의 자식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자신들과 대등해지려는 다른 신, 또는 인간의 행동에 죽음으로 갚는 것이 아폴론의 속성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권력에 대한 저항의 원형이라면, 아폴론은 굴절된 권력을 보위하는 젊은 세대의 원형이다. 1세대 제우스로 상징되는 기득권의 지속적 현재화를 위해 봉사하는 2세대가 아폴론이란 말이다. 이렇듯 1세대의 권력을 집행하면서 향후의 수권을 보장받는 공생 내지 유착의 전형은 장인과 도제 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맑스의 글을 보자.

 

“장인의 이익에 최대한 알맞은 방식으로 도제와 직인은 모든 직종에서 조직화되어 있었다. 이들과 장인 간에 있었던 가부장적 관계는 장인에게 이중의 권력을 부여해 주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직인의 생활 전체에 대해 행사하는 장인의 직접적인 영향력 때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인과 함께 노동하는 직인에게 있어서는 가부장적 관계야말로, 그들을 다른 장인 아래 있는 다른 직인들에 대항하여 결속시키고, 다른 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짓게 하는 현실적인 유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인들은 스스로 장인이 된다고 하는 그들의 이해 관계에 있어서도 이미 기존 질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 독일 이데올로기 -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이 독일의 도제와 직인의 형태로 변환되어 살아남았다. 이제 아폴론은 한국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번안되어 끈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해방정국의 폭력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 세속 극우 조갑제와 기독 극우 김홍도 목사가 합작해 진행했던2011년의 6.6 국민대회에서 안전요원을 하며 뉴스앤조이 기자들을 쫓아냈던 기독 청년들,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 받으며 제대로 된 반성 한번 하지 않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2,30대들, 군대에서의 폭력은 군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우기는 예비역 청년들, 교회에서의 목사님 비판은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같다며 불경스럽다 여기는 청년들, 애들은 맞으면서 커야 하니 체벌 금지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우리 목사님, 또는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이라면 성추행을 해도, 횡령과 사기를 쳐도 눈과 귀를 닫고 간음한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지냐며 옹호하는 교회 청년부의 형제, 자매들, 교회 어르신들이 진행하는 일이라면 수백, 수천억을 쏟아 부어 편법을 쓰면서까지 궁전 같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우기며 지어대도 박수치고 응원의 기도를 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반값 등록금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과 등가적이라며 보수언론의 사설을 받아 적는 한심한 청년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아폴론들은 권위주의와 시장주의와 가부장제를 떠받들며 그것에 저항하는 프로메테우스들에게 어르신들의 이름으로, 제우스의 이름으로 철퇴와 독화살을 날린다. 그들은 권위적이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사회 제 영역에서 확대 재생산하고, 장인에게 도제가 자신의 이()를 보장받았듯이 충성의 대가로 현재의 안정과 미래의 성장 – 세상에서라면 기업 상사와의 원활한 관계 및 승진, 교회라면 교회 어르신들의 인정과 안수 집사 및 장로직 - 을 약속 받는다. 결국 아폴론들의 행위에는 단순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윤리에의 헌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이해관계도 들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