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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전 에세이

[2012년]잠언 말씀을 근거로 초중등교육기관에서의 체벌을 합리화하는 것에 대한 반박

 

기독교인 중 일부는 잠언 말씀을 근거로 초중등교육기관에서의 체벌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요즘 서울시 청소년 인권조례안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체벌 금지에 대한 교회적 입장을 세우겠다며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들이 근거로 삼는 구절 중 대표적인 것은 이것이다.

 

[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잠언에서 채찍으로 때려 훈계하라고 했으니체벌이 합리화된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정말 아이들을 채찍으로죽지 않을 만큼 많이 때려야 하는 게 성경적인 체벌이 된다그들은 잠언의 위 구절을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체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럼 그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지키겠다는 게 아니라위 구절에서 말하는 핵심적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위 구절의 중심적 내용은 훈계를 위해 아이를 물리적으로 때리라는 이야기다그래서 꼭 채찍으로 때릴 필요는 없다.” 즉 채찍은 형식이고그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체벌을 수반한 훈계란 말이다.

 

그런데 위 구절에서 중심적 내용이 체벌(을 수반한 훈계)이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 문화적 형식은 채찍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가다르게 생각하면 체벌이 형식이고 훈계가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자녀를 훈계해야 한다는 것이 내용이고그 훈계라는 내용의 문화적 표현양식이 체벌 내지는 채찍이라는 것이다만약 이런 해석이 옳다면 훈계를 위해 반드시 체벌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된다그러나 이것도 위의 잠언 구절만을 가지고는 확정지을 수 없다훈계와 채찍이라는 소재로 구성된 잠언의 비슷한 구절들( 29:15 ;22:15)에서 중심적 내용과 문화적 표현 형식 간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경계선을 찾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훈계의 표현으로서 채찍을 택할 것인지채찍을 제외한 광범위한 체벌을 택할 것인지아니면 체벌을 원천적으로 제외한 훈계의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그리고 그 결정은 문화적 표현에 규정력을 발휘하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 현시대의 권세를 참조함으로써 가능하리라 본다.

 

로마서 13장에는 국가 권세에 복종하라는 내용이 나온다권세에의 복종이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는 준엄한 선언이 담겨 있다물론 하나님의 권세를 거스르는 세상 권세에 따를 이유는 없다사도행전 5장에서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에게 말씀 선포를 금지하는 장면이 나온다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기구로서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던 공적인 권세였다그러한 권세의 명령에 대해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5:29)”하며 불복종했다하나님의 권세보다 공회의 권세가 클 수 없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권세에 관한 중요한 원리는항상 "더 큰"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이다하위 권세가 상위 권세를 거스른다면그 하위 권세의 명령이 아닌 상위 권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럼 로마서 13장의 국가 권세로 돌아와보자한국에서 최고의 정치적 권세정치적 약속이 무엇인가헌법이다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을 설계한 것도 헌법이요대통령의 권력을 규정하는 것도 헌법이다그리고 그 헌법의 최종 인준은 국민 투표를 매개로 한 국민의 선택과 결정이다따라서 헌법을 거스르는 하위의 법들은 궁극적으로 타파되어야 할 반역적 자율 권세들이다기독교인으로서 국가 권세에 복종하려면고로 제일 먼저 헌법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권세에 저항하는 헌법은 거부되어야 한다유신헌법과 히틀러 헌법이 그 예이다그러나 87년 체제를 출범시킨 현행 헌법의 원리가 뚜렷이 반기독교적이라 볼 합리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 헌법이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던가헌법 제12조는 신체의 자유를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법률에 의한다는 것은 형법상의 죄를 범했을 경우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가능하다는 말이다그러나 학생들이 초중고교에서 저지르는 잘못은 형법상의 죄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따라서 초중고교생에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벌 - 체벌은 신체에 위해를 가한다는 측면에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 - 교칙을 적용하는 것은 반헌법적이다만약 그들이 심각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질렀다면그것은 법률에 근거해 경찰이라는 국가 공권력의 투입으로 해결해야 한다교사에게 범죄 해결을 위한 처벌권이 주어지지는 않았다왕따로 인한 자살집단구타타살성폭행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육 현실은 체벌이라는 사적 처벌이, 조직적이고 물리적인 처벌권의 독점(합법적 폭력)을 국가에 부여한 법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교육 현실 개선에 있어서도 실질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위 논의의 끝에서,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이 "세속 권세에의 복종"이라는 신학적 테마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따라서 타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체벌 – 냉철하고 절제된 체벌이라도 체벌은 어쨌건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 에 찬성하는 것은반헌법적인 하위 권세에 복종함으로써 로마서 13장을 위배하는 꼴이 된다다시말해 교칙이든 조례이든그것이 헌법보다 높을 수 없다는 것이다교육기관은 결코 초헌법적인 기관일 수 없다.

 

이제 글의 첫머리에 달아 놓았던 잠언 구절을 보자전술했듯이 잠언 말씀이 주장하는 훈계의 표현양식이 채찍인지 체벌인지를 그 구절 안에서 논리적으로 확정짓고 구획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그 구절 외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해석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로마서 13장에서는 국가 권세에 복종하라고 했다그리고 민주 국가에서 국가 권세의 최고 형태는 헌법이다그 헌법에서 신체의 자유라는 당위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에 체벌을 이용한 훈계는 국가 권세를 거스르는 행위가 된다체벌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들도 차마 잠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채찍을 이용한 체벌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한다왜냐하면 채찍을 이용한 체벌은 그들의 폭력에 대한 느슨한 기준에도 매우 심각한 위법 행위라 생각되기 때문이다즉 그들도 국가 권세의 범위 안에서 체벌의 양식을 설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잠언의 말씀에 따라 미성년자를 훈계해야 하며그 훈계의 방식은 로마서 13장의 말씀대로 국가 권세구체적으로는 최고 권세인 헌법에 복종하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잠언 말씀 몇 구절만을 가지고 체벌 찬성을 치고 나가는 기독교인들이 앞으로는 성경 전체의 맥락과 다른 본문에도 관심을 갖는 신학적 도량을 키워나갔으면 한다동시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세인 헌법을 묵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