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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비정상회담,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비정상회담이 진짜사나이와 다른점

비정상회담 6회차(8월 11일 분)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6회차 비정상회담의 콘셉트가 지닌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성시경에 관련된 논쟁은 ☞이 포스팅을 참조하기 바란다)


애초에 비정상회담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방송에서 실현되고 있는 콘셉트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면, 그 콘셉트는 재고되어야 한다. 6회차 비정상회담의 콘셉트는 한국 직장 문화에 대한 G11 외국인들의 의견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문화는 이러이러한데, 너는 이 한국문화 따를래 말래?’였다.


우선 주요 안건의 워딩을 보자. 

“한국식 엄격한 서열문화, 필요하다 vs 필요없다”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 한다 vs 안한다”

“원치 않는 회식자리, 간다 vs 안간다” 


이제 이 워딩에 MC와 제작진의 진행 방향이 덧입혀지는데, 그 진행방향은 ‘한국에서’라는 단어가 추가됨으로써 완성된다. 즉, 위 워딩은 다음과 같이 변형되어 던져진다.


“(한국에서) 한국식 엄격한 서열문화, 필요하다 vs 필요없다”

“(한국에서)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 한다 vs 안한다”

“(한국에서) 원치 않는 회식자리, 간다 vs 안간다”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살면서 한국 문화를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일종의 ‘로마에 왔는데 로마법 따를래 말래?’의 콘셉트이다. 이런 식의 질문이라면, ‘난 한국 문화를 따르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를 따르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눈초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벨기에의 줄리안에게 쏟아진 3MC와 샘 오취리, 에네스, (독일)다니엘의 발언("줄리안이 회사생활, 조직생활 안해봐서 그런거야")은 방송에서 한국 문화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분위기상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아래 캡쳐 사진 참조 바람)








 


 


차라리 워딩은 위에 처럼 그대로 놓아두더라도, 토론의 진행 방향을 ‘한국의 이러이러한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만들어갔다면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문화를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의 행위적 차원 보다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문화에 대한 가치판단적 차원의 접근이 좋았을 뻔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을 유지하다보면 자연히 G11이 속한 외국의 회식문화, 기업문화, 서열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나오고, 한국 문화와의 비교, 대조가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6회차 비정상회담의 진행 콘셉트(한국문화 따를 거냐 안 따를거냐)를 견지하다보니, 설령 외국의 기업문화,회식문화 사례가 G11의 입을 통해 나오더라도 더 이상의 깊이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채, ‘그건 너희 나라 얘기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 따라야지. 우리나라 문화 따를건데 말건데?’로 귀결되어 버렸다. 

 


 


↑6회차 정상회담의 콘셉트가 집약되어 있는 알베르토의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왜 제작진은 이러한 콘셉트를 잡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샘 워싱턴을 통해 흥행에 성공한 <진짜 사나이>의 콘셉트이다. <진짜 사나이>의 흥행 요인에는 단순히 군복무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킨다는 것 외에도 한국식 문화에 깊이 동화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 샘 워싱턴의 역할이 컸다. 영어를 쓰는 백인이 한국 군대에서 호형호제하며 우리 문화에 젖어드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기에 착안한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훈남 G11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순응하고 따르는 모습을 토론장에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어내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성시경 등의 세 MC가 무리할 정도로 토론에 개입해 한국의 악폐습적인 조직문화를 옹호한 것도 이러한 제작진의 계산이 투영된 결과일 테다. 물론 MC들 자신이 그러한 적폐를 적폐로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적 한계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만약 시청자들이 비정상회담의 현재 콘셉트에 만족한다면 이대로 밀고나가도 된다. 하지만 최근 비정상회담의 시청자 게시판과 페이스북 페이지, 그리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이같은 콘셉트가 발생시킨 불쾌감을 성토하는 의견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분명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진짜 사나이>와 <비정상회담>의 범주적 차이를 직시한 후 콘셉트를 수정해야 한다. <진짜 사나이>는 군대라는 특수 조직, 그리고 그 특수 조직에 걸맞는 문화를 소개하며 여기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진짜 사나이>가 소개한 군대 문화는 군대에서는 필요한 문화였기 때문이다.(현재 실제 한국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학과 피학의 병리적, 변태적인 군문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사나이에서는 지극히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군문화만 소개되었다.)


그러나 비정상회담이 6회차에서 소개한 한국문화, 즉 강제적 술회식문화, 퇴근시간 이후에도 눈치보느라 억지로 야근해야 하는 직장문화, 근로자의 사생활이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는 도저히 문화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는 불합리한 적폐요 악습이요 후진적 추태이다. 이렇듯 많은 한국인들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문화를 옹호하며 로마에 온 외국인들에게 로마법을 따를 것을 압박하는 비정상회담은, 그래서 <진짜 사나이>와 같은 공감은 커녕 엄청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