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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후 에세이

'노예의 길' 토의 주제

1. 책을 읽고 느낀 점 나누기.


2. 하이에크는 현대문명의 기초가 개인주의라고 주장한다. 크리스트교와 그리스-로마 문명으로부터 사상의 맹아를 상속한 개인주의는 르네상스 때 만개하며 시민혁명 이후 주류적 정치 제도로 빚어진다. 이렇듯 서구문명은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성을 가졌다. 따라서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는서구문명의 진화 전체로부터의 예리한 단절이다. 하이에크는 당시 영국에서 개인주의가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에게 이 두 개념은 개인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 개인주의를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 즉 그 자신의 견해와 선호를 그 자신의 영역에서는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하이에크에게 개인주의의 붕괴는 자유주의의 포기와 노예의 길로의 귀결이다. 결국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이고, 따라서 자유주의가 제1의 가치로 섬기는 자유란 집단의 자유가 아닌 개인의 자유이다. 

한편 현재 하이에크식의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한국의 우파(ex:자유기업원)는 기업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기업은 법인격을 지닌 조직화된 집단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유주의는 하이에크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아닌, 집단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집단주의적 자유주의는 아닌가?


3. 하이에크가 시장에 대한 모든 국가 개입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경쟁이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법적 틀을 제공하는 형태의 국가 간섭은 필요하다. 하이에크가 예시로 든 간섭에는 특정한 독성물질의 사용금지, 근로시간의 제한, 위생시설의 의무화, 화폐·시장·정보망의 조직화가 있다. 또한 경쟁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분야(ex : SOC)에서는 단순히 법적 틀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는 국가의 직접 규제도 필요하다. 이같이 필요최소한적인 국가의 개입을 우리는 자유주의적 국가 개입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법정 의무교육 또는 고용노동부 환급과정에서의 국가 역할은 자유주의적인가 계획경제적인가?


4. 하이에크는 계획경제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법적 틀을 구성하는 일반규칙에 대한 결정이 아닌, 법적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문제에 대한 상세한 집행문제는 결정 주체의 자의와 재량이 필요한 분야이다. 이 집행문제를 개인에게 맡긴다면, 각 개인의 재량이 가격 시스템을 통해 적절히 조절된다. 하지만 집단적 계획에 의존하는 순간 수많은 개인들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 재량권이 소수의 전문 관료에게 넘어간다.    

경제문제 집행은 선호, 가치관이 개입되는 주관적 성격을 띨 때가 많다. 경제적 선택이 순수하게 기술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경제 행위를 소수의 과두 집단에게 맡기는 것은 자의적인 권력을 재가하는 셈이 되고 이는 독재를 배양시키는 데 매우 유리한 환경이 된다.   

혹자는 전문가에게 위임한 권한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표현을 빌리자면포괄적 경제계획을 조목조목 투표하고 개선하는 민주적 의회는 비현실적이다. 우선 단계별로 수많은 세부사항을 투표해야 한다는 기술적 복잡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뿐만 아니라 투표로 정한 세부사항들은 기존 계획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 것이다. “경제계획이 그 이름에 걸맞으려면, 하나의 단일한 개념을 가지고 도출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적 다수결을 통해 일련의 군사 작전을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다. 군사전략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계획도 전문가에게 과업을 위임하는 게 필연적인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정 계획에 대한 위임은, 특정 계획들을 포괄하여 조절하는 최종적 계획에 대한 위임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위임은 특정 계획 내의 작은 독재를 구성하고, 작은 독재가 모여 최종적인 독재 즉, 민주주의 전체의 압살을 결과한다.           

이러한 하이에크의 경제계획와 독재 간의 필연적 관계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